제 답은 완전 소용이 없는데요.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인데요, 그래도 욕먹을 각오하고 말씀드리자면요.

진보신당분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진보신당분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두려움에서 벗어난 명석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세상을 살아갑니다.

 명석한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그런 두려움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속에 있는 사람들은 명석한 사람들이 자기들을 바보라고 한다고 듣습니다. 아무리 멍청이라고 할지라도 자기를 멍청이라고 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속에 있는 사람들은 명석한 사람들을 싸움닭으로밖에는 보지 않습니다.

명석한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지만, 두려워하는 사람중 그 누구도 자기들을 가르쳐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가르쳐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를 가르치려 하는 사람들, 맞고 틀리고를 떠나 재수없는 인간들입니다.

 명석한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이런 가시밭길을 걸어간다. 왜 그들은 우리를 외면하는 것일까? 이걸 알기 위해서는 진보신당분들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자신들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지 내지는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쥐박이같은 인간들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려들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멍청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게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절대로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계몽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속 그렇게 두렵게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이것이 야비한 인간들이 하는 요리법입니다. 이것이 한나라당이 절대과반수이상의 국회의석수를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진보신당이 3%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진보신당분들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이상,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두려움과 명석함은 '돈 후앙의 가르침' 중 '앎의 사람의 되는 과정의 4가지 적 중 첫번째 두번째 단계이자 적입니다)

 
봄산
말하자면, 오만한 사람들이고 자기에 대한 성찰이 없는 거군요. 사람이 모두 생각이 다른 법인데, 자신들의 신념만 고집하며 그 길로만 가자 하더군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배려를 모르고 연대를 거부하는 것이 과연 진보의 길일까요? 이 분들의 문제점은 한 길만 고집함으로써 스스로 자유로움을 잃은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구속되고 자유롭지 못한데, 그리고 그 자유롭지 않음이 보이는 데, 누가 그 길을 같이 가고 싶어 할까요? 자신과 다르면 틀렸다 말하고 다른 이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을 뿐더러 그 자체를 못 견뎌하는 게 현재의 집권세력과 닮은 점인 것 같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명석함은 결국 세상과 사람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못하게 만드는, 그들 자신을 옭아매는 덫인 셈입니다. '헛똑똑이'가 되어버린거지요. 음..여기까지 댓글 달다가 해답을 찾았어요. 결국 관건은 그 경직성에 있는 거군요. 그들이 멍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조차도 다양성이 이 세상을 유지하고 번성하게 하는 것이고, 자유로움이 좋은 것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압니다. 사람들은 그 자유롭지 못하게 될 구속을 본능적으로 내다보고 거부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유로움이 없으면 두려움 또한 그대로 남게 되겠지요. 자신들에게 이로운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사실상 '두려움없는 명석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두려워하고 있는 멍청이들'은 멍청한게 아닌 겁니다. 그래서 노무현이 얘기했듯 개체로서의 인간은 변하지 않지만, 그 개체가 모인 집단으로서의 인류는 늘 진보해 왔던 겁니다.
유레카! 동기부여를 해 주신 덕분에 좋은 공부했습니다. thank you!^^
10.06.1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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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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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 읽지 못한 소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곳간에 양식은 충분하고, 지붕도 다 고쳐두었습니다. 장작도 다 마련되어 있고, 가축들도 우리에 잘 가둬놓았습니다. 그러니, 신이시여, 비를 내리려면 내리소서'

 길거리의 수행자의 버전은 이와 다릅니다.

 '잃어버릴 가축도 없고, 고쳐야 할 집도 없고, 보관해야할 양식도 하나 없습니다. 가진게 없으니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이시여 비를 내리려면 내리소서'

 하도 오래전에 본 것이라, 그리고 끝까지 읽지도 않은 책이라서,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법구경을 보다가 '길거리 수행자의 버전'이 법구경에서 온 것을 알고 저으기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2.

한국의 60년대, 70년대 이야기입니다. 대다수 집에서 한겨울에 따뜻한 물을 쓰기위해서는 일일이 물을 데워야했습니다. 세숫대야나 들통에 물을 데웠습니다. 바가지로 퍼서 썼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바로 온수가 나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시절 누군가는 집안에서 따뜻한 물로 씻으면 정말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나이가 들고, 일년내내 집안 화장실에서는 온수가 나오고, 이제 자동차도 굴리고 사는데도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인터넷 어디에선가 봤습니다. 그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3.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적게 가진 것을 걱정하기보다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

논어에 나오는 말입니다. 문제는 가진게 적어서가 아닙니다. 온수가 나오는 수도꼭지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젠 어느 누구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골프를 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아니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못하는 골프를 나는 하기때문입니다.
논어의 구절을 보면서 2500년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별로 변한게 없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4.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미래에 희망을 품고 살아가라는 말을 볼때마다, 이런 개소리가 어디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최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샘터지나 좋은 생각같은 곳에서 이런 얘기들을 볼 때마다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짓 주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보다는 아예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이 자유를 향한 길이라고, 그리고 모든 걸 버릴때만이 모든것에 대한 완전한 소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옛날 얘기입니다. ㅋㅋㅋ

 5.

지금의 저는, 현재가 미래에 저당잡히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이것이 제가 머리속으로 아는 것입니다. 잘 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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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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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아는 분이 결혼에 대한 얘기를 메일로 해오셔서 거기에 대한 답을 메일로 보냈습니다. 제가 쓴 부분만 여기에 옮겨봅니다.

 ////////////////////////////////////////////////////////////////////////////////////////////////

 결혼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관찰을 하고 학위도 받고 그러겠지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갖는 보수성은 충분히 인지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결혼을 기반으로한 가정이 필수적인 만큼, 결혼이라는 제도의 유지를 위해서,아니면 최소한  결혼이라는 제도의 붕괴를 막기위해서 보수주의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지요. 동성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그 한 예입니다.

 호주는 잘 모르겠고요, 한국을 보면, 우습게도 이런 보수주의자들의 결혼생활은 많은 경우, 일부일처제에 충실한 결혼생활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자들, 씨를 뿌리는 본능이라는 핑계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여자에게는 가혹한 기준을 들이댑니다. 

 현재의 결혼이라는 제도도 역시 제도인만큼 생주이멸의 과정에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죽기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제도로서의 결혼은 계속 유지되겠지요. 하지만, 몇백년이 지나면 결혼이라는 제도도 역시 다른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쯤이면 지금 현재의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도 바뀌거나 아마 사라질 것이고요.

 그렇긴해도,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라는 것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남자만큼 여자의 관심을 끄는 존재를 보지 못하였다. 나는 여자만큼 남자의 관심을 끄는 존재를 보지 못하였다' 붓다의 말씀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결혼이라는 제도가, 부처님의 뜻에 반하는 제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대로 읽지는 못했지만,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은 일부일처제로 묶이는 결혼이 사유재산, 그러니까 소유라는 것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것과 내것의 구별이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집단혼이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결혼제도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의 시작도 집단혼이었고 마지막도 집단혼이라면 순환의 고리에 걸맞는 완벽한 수미쌍관이 되겠군요.

 그렇다고 제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속박의 의미가 강하긴 하지만, 이런 속박이야말로 자유를 향한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유는 무엇을 벗어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아직까지 몸으로는 알지 못해도, 머리속으로는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결혼을 안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무지몽매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결혼하고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요.결혼생활이야말로 선방에서 가부좌틀고 앉아있는것보다 훨씬 더 큰 공부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착하고 지혜로운 아내에게 많이 배운 것도 있지만, 설사 악처라 하더라도, 그 배움이 더 크면 컸지 적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악처하고 살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훌륭한 아내를 만났는데도 이렇게 때로는 삐걱거리니 말이지요. ^^

 ///////////////////////////////////////////////////////////////////////////////////////////////////

 결론에 가서는 아내자랑이 되어버렸네요. 아내자랑은 팔불출인데, ㅋㅋㅋ 하지만, 자세히 보면 훌륭한 아내를 만났는데도 이렇다면 역시 나는 못난 놈이다라는 자기고백도 됩니다. 아내자랑을 한게 아니라 제가 못났다는 소리를 해 놓은 것이니 너무 욕하지는 말아 주세요. ^^

 2010.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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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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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쇼핑센터에 갔습니다. 히터를 사러 갔는데요, 케이마트에는 히터가 하나도 남질 않았더군요. 타겟에는 몇개 있긴 했는데, 집에 있는 오일 히터라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쇼핑센터에 가면, 파는 물건들이 한국하고는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의식주문화가 다르니 당연한 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얼마를 더 살아야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살지 모르겠습니다.

2.

논어 첫 구절은 꽤나 유명합니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두번째 구절도 꽤나 유명합니다.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낙호아. 특히 우스개로 인용되기도 합니다. 세번째 구절은 그다지 유영한 구절은 아닙니다. 인부지이불온이니 불역군자호아.

 대충 해석해보자면,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찾아와서 같이 수다떠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닌가. 이 정도가 됩니다.

 전 앞의 두 구절보다  세번째 구절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든 생각은, 이 세 문장을 논어의 맨 앞에 편집한 사람은 거의 한소식 했다고 할 만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 문장 모두 공자의 말임에는 틀림없지만, 논어라는 책은 공자 사후에 편집된 책이거드요.

 논어에는 멋진 구절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에 비해서 맨 앞의 두 문장은 그저 그래보입니다. 뭔가 심오한 것 같지도 않고, 대단한 의미가 있어보이지도 않습니다. 댓구의 묘미도 보이질 않습니다. 한마디로 깊은 뜻하고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그나마, 세번째 구절이나 되어서야, 좀 새겨볼만한 구석이 있는 것 같고, 그런대로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최근에 든 생각은, 논어의 이 첫 세 문장이야말로 논어의 알파와 오메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 것입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이런거 저런거 알고 배우는 기쁨 - 그것이 설사 작은 목공일이나, 기타를 배우는 일, 배드민턴을 하는 거나 그런 것이라 할지라도요, 아니 오히려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에, 말 통하는 사람과 이런 저런 세상사는 얘기하는 거, 그리고, 남이 뭐라 해도 그냥 나답게 사는 것. 세상사는 건 이것말고는 더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이런 말을 한 공자도 공자지만, 이 세 문장을 논어의 맨 처음에 집어넣은 사람도 대단한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경'자가 들어간 책의 첫 구절은 꽤나 유명해서 설사 그 책을 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귀동냥정도는 했을만한 말들입니다. 대학이나 중용의 첫 구절도 그렇고요. 도덕경의 첫 구절은 '도가도 비가도' '명가명 비상명'입니다. 도덕경에도 멋진 구절들이 많지만, 이 첫 구절이 어찌보면 도덕경의 대표적인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경전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닙니다. 금강경은 많은 학자들이 세번째 대승정종분을 금강경의 정수로 꼽고 있고요. 하지만, 반야심경은 제일 첫구절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이 부분을 핵심으로 봅니다. 저도 처음 반야심경 해석을 보는데 이 구절에 뻑갔었지요.

 

4.

제가 성경은 잘 모르는데, 방금 구글링을 해보니, 창세기 제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라'이렇게 나오는군요. 아마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이 창세기 1장 1절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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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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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엔 드디어 장작불 직화구이및 꼬치구이를 했습니다. 거의 일주일에 걸쳐 장작불 직화구이와 꼬치구이 준비를 했는데요, 준비과정에 부상을 입는 불상사가 발생해서 만 이틀을 자리에 누워지내기도 했습니다. 이 얘기는 다음에 사진과 함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제는 블루마운틴에 부시워킹을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곳은 웬트워쓰 폴 트랙입니다. 시드니에서 부시워킹을 간 것은 금년에 처음입니다.

아침 6시에 지인을 스트라스필드에서 픽업해서 M4를 이용해서 블루마운틴으로 갔습니다. M4는 통행료가 없어져서 좋았습니다. 전에는 파라마타까지 가서 거기서 M4로 진입했는데요,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요.

하지가, 아니다. 여기는 남반구니까 동지라고 해야겠네요. 동지가 지나니 확실히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웬트워쓰 폴 트랙 주차장에 도착하니 날이 훤했습니다. 주차장은 텅비어 있었고 제가 1등. 등산화 끈을 조이고, 무릎보호대를 차고, 배낭을 매고, 등산스틱 한 쌍을 가지고 갔는데, 하나는 고장이 났더군요. 하나만 늘여서 짚고는 트랙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날은 많이 춥지는 않았습니다. 웬트워쓰 폭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잘 있더군요. 떨어지는 폭포수도 그대로였습니다. 물론 떨어지는 폭포수의 물이 그대로였냐고 한다면, 예전에 제가 봤던 그 물방울들은 아니겠지만요. 한국과는 다르게 계곡과 폭포의 수량은 여전했습니다. 한국의 산은 겨울이 심한 갈수기입니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협곡에 구름이 깔려있었습니다. 트랙에서 만난 사람도 많지는 않았고요. 평일인 탓도 있었겠지요. 같이 간 사람과 하도 수다를 떨며 가느라, 막상 경치를 감상하지는 못했습니다. 몇번 가본 곳이어서 그럴 필요도 없긴 했습니다만.

처음 내리막길에 무릎에 좀 충격이 있나 싶었는데, 곧 괜찮아졌습니다. 나중에 오르막길 트랙에서는 숨도 차고 땀도 나고요. 오랜만에 땀흘리고 숨이 차니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블루마운틴도 괜찮긴 합니다. 처음엔 내려가야 하지만, 어쨌거나 오르막길도 있고, 또 짧은 코스부터 긴 트랙까지 다양한 코스들도 많고요.

하지만, 블루마운틴에는 없는게 있습니다. 바로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맛입니다. 땀흘리고 정상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는 그 맛은 등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입니다. 산이라기 보다는 협곡에 가까운 블루마운틴에서는 이런 기분을 느낄 수가 없지요. 물론, 꼭 무엇을 찾거나 얻기 위해서 등산을 하는 건 아닙니다. 정상에 올라도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다시 주차장에 돌아오니 차들도 가득했고 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들도 많았습니다. 가서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여기는 블루마운틴. 산은 산인데, 산이 아닌 산이라고 말이지요.

다음엔 호주한인포럼 회원분들과 함께 했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일시가 적당해야겠지요? 트랙중간에서 옆으로 새서, 버너 코펠에 라면끓여먹는 불법행위에 동참하실 수 있는 분이면 더욱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하니, 이럴 불법취사행위가 필수는 아닙니다. ^^

하지만, 이것만은 말씀드리고 싶네요. 하지말라는 거 하는게 훨씬 더 재밌고, 더군다나 산 속에서 먹는 라면은 집에서 먹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 말입니다. ^^


2010.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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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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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위하여'라는 책을 빌려서 보았습니다. 10년전의 책입니다. 삽십대 후반의 김규항이 그 안에 있었고, 홍세화, 진중권, 김정란이 공동 필자입니다. 아웃사이더라는 잡지를 내기전에 출판한 네 사람의 글을 모은 단행본입니다.

지금의 김규항과 그때의 김규항의 글은 꽤나 다릅니다. 지금의 글이 더 세련되었다는 생각입니다. 10년전의 글에서 김규항은 본인을 건달로 표현하는데, 지금의 김규항도 건달이 맞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표현한 것처럼 사람들은 김규항을 강인한 지사형 인간으로  보지만, 김규항이 생각하는 김규항은 - 이게 더 사실에 가까울 텐데요- 예술적 기운이 충만한 사람에 가깝겠다는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딴따라끼가 많은 사람이지요. 어울리는 사람을 봐도 그렇고요.

홍세화는 예전에 한국에서 그의 책을 읽을때와는 달리 느껴졌습니다. 그건 아마 제가 이민자로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홍세화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던 망명기간을 생각하면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더군요. 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한국에 다녀올 수 있지만-실제 여건을 떠나서요-, 제가 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 뭐랄까요, 상실감, 막막함, 이런 것들의 무게는 정말 숨이 막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홍세화가 나이들어서 아내의 반대에도 한국으로 혼자 돌아온 것도 마음으로 먼저 공감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소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제가 첫째,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술을 못 마시고, 둘째,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돈에 관심이 없고, 셋째,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혼자 놀기를 좋아해서 같은 이유였는데요, 여기에 와서 보니, 저는 한국에서 아웃사이더이긴 했으되, 그렇다고 마이너리티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호주에서 마이너리티로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죠. 진짜 마이너리티가 되면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마이너리티의 삶을 알게 해준 호주에 감사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고마운 마음이 별로 안 드는 걸 보면 저도 어쩔 수 없는 욕망덩어리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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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

두어달 전 이야기입니다.

통계학 수업에서 두명이 한 조로 침술에 관련된 의학논문 세 편을 조사해서 발표하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편두통치료에 대한 침술과 양약의 비교실험이 토픽이었지요. 의학논문검색은 의학논문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서 논문초록을 보고 찾게 됩니다. 적당한 논문 찾가기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힘들게 두편을 찾고 나머지 하나는 도서관사서의 도움을 받아서 어렵게 어렵게 찾았습니다.

의학잡지를 들고 기다리고 있던 파트너에게 갔습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무슨 소식부터 들을래요?"

"좋은 소식이요"

"좋은 소식은 그 논문을 찾았다는 겁니다"

"와 잘됐다! 그럼 나쁜 소식은 뭔가요?"

"중국어논문이에요"

 이런 우라질레이션! 논문초록은 영어로 되어있었는데, 찾고 보니 본문은 중국어로 되어있었던 겁니다. 우쒸~~~~~~~~~

 니 하오마. 짱께 호떡 조아해. 우리 짜장면 볶다가 불났어해. 워아이니. 피야요랑마. 쎄쎄


201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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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지낸지도 5년이 넘었습니다. 제가 여기와서 가장 많이 배운 건 바로 요리입니다. 요리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을 한 것도 아니고요,매일 집에서 밥해먹고 살다보니, 5년전보다 제 요리실력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최근에 방학동안 집에서 제가 해 먹은 것만 해도, 사시미용 연어를 사다가 초밥을 만들어 먹었고요, 가쓰오 부시 소스로 일식덮밥 돈부리를 해먹었습니다. 갈비찜은 아저씨 두명을 집에 불렀을때 했고요. 그때는 감자를 손으로 갈아서 감자전도 했네요. 공원에 가서 직화구이해먹으려고 직접 꼬치까지 만들었고요. 아~ 다시마국물을 내서 꼬치오뎅도 해 먹었군요.
최근에는 튀김기도 사서, 마늘소스 프라이드 치킨을 만들었습니다. 삼계탕이나 닭곰탕 먹다가 닭튀김먹으니 좋더군요. 튀김기 없을때도 조그만 냄비에 프라이드 치킨을 했었는데, 그때는 실패였고 대신 돼지고기 탕수육을 해 먹었습니다. 짜장면도 만들어서 애들 멕인적도 있고요, 전에는 김치를 담그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부엌일을 엄청나게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너무 힘들어요. 저녁 6시에 부엌에 들어가서 다시 앞치마를 벗게 되면 밤 9시입니다. 학교다닐때는 도시락까지 싸야하는데 이만 저만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국민학교 중,고등학교때 도시락 지긋지긋했는데, 다시 또 도시락과 함께 하는 인생이라니 화딱지납니다. 부엌에 있으면 다리도 아프고 일은 끊이지 않고 냉장고까지 말썽이어서 청소도 자주 해줘야 합니다. 정말 부엌일은 너무너무 힘듭니다.

이러니, 가정의 평화에도 도움이 안 되지요. 부엌에만 들어가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요리할때 그릇 집어던지는 건 예사입니다. 식후 설겆이는 대개 아내가 합니다만, 요리할때 나오는 설겆이거리도 보통이 아닙니다. 자취생활할때 주부습진이 걸린 적이 있는데요-그때는 부엌일도 별로 안했는데 말이지요-, 이러다가 또 주부습진이 재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손목도 아프고요, 담배불에 조금 데는 건 화가 안 나는데, 프라이팬의 기름이 조금만 튀어도 앗 뜨거를 백번도 넘게 합니다. 애들이 부엌근처만 와도 신경질부리기 일쑤이고요.
이러다가 부엌에 내 뼈를 묻게 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딜 놀러가려고 해도 먹을거 준비할 생각하면, 짜증부터 납니다. 그나마 김밥보다는 삼각김밥이 간편하긴 한데, 그것도 안에 들어갈 양념준비하려면 족히 한시간은 넘거든요.
한국에 가서 살고 싶은 이유가, 딱 두개인데, 하나는 등산이고, 하나는 부엌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지낼때는 바깥 식당에서 먹는 거 싫어했는데, 천원짜리 김밥한줄, 삼천오백원짜리 돈까스가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호주에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살이 영원한 것은 없으니 이 순간도 지나가긴 하겠지요. 짜증내지않고 부엌일하는 아내가 존경스럽습니다.

 
2010.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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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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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금요일아침 학교가는 길이었습니다. 센트럴 스테이션에서 내려서 걸어갑니다. 비가 오는 날씨라 지하보도를 쭉 걸어가서 에이비씨 건물 뒷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에이비씨 바로 길 건너 맞은편이 학교 클리닉이 있는 건물입니다.

 에이비씨 뒷문에 경찰 몇몇이 서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반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에이비씨 건물안에 들어서니 경비원들이 많았습니다. 왠일인가 싶었습니다. 시간은 7시 40분이었지요. 소란스럽다 싶더니, 정문앞에 시위대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부젤라인줄 알았습니다만, 나중에 보니 양철통이랑 장난감 나팔같은 것이었습니다. 대략 30명정도 모여있었습니다. 피켓에는 Give Peace a chance 란 구호가 적혀있었습니다.

 찌라시를 받아보니 내용인즉슨, 에이비씨는 우리 민주주의의 시금석이다. 균형잡힌 시각을 유치재햐 한다. 벗뜨, 호주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해야한다는 걸 본적이 있느냐? 군비축소에 대한 방송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인 점령에 대해 시청자들은 알 권리가 있다, 등등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추운 날, 비도 오는 가운데, 유인물을 나눠주고 나팔불고 양철통 두드리고 그렇게 한 시간동안 시위를 하더군요. 연령층은 다양해 보였습니다. 남녀노소 골고루 섞여있었습니다. 경찰은 뭐 별로 할 일 없이 옆에들 서 있었고요.

 만약에 한국에서 케이비에스앞에서 시위를 한다면 이슈가 무엇일까요? 모르긴 몰라도, 팔레스타인이나 군비축소같은 이유는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은 아직도 내 코가 석자인 것 같고요.

 그나저나, 시위도 이렇게 아침일찍 하다니, 실질적인 시차는 한 서너시간 된다는 걸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추운 날 비맞으면서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유 가이스, 해브 유 이튼 브랙퍼스트? 그러니까,  니들 밥은 먹고들 왔는겨?

 2010.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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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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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우기를 병원에 있는 세균은 더 강하답니다. 내성이 생겨서 그렇다고요. 항생제에 대한 내성입니다.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가 더 강한 세균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세균을 죽이자고 만들어 낸 약이 더욱 더 강한 세균을 만들었으니까요. 단편적으로 생각해보면, 항생제는 세균에 대한 약이니 항생제를 안 쓰면 세균이 더 강해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더 강한 세균을 만드는 것은 항생제입니다.

 

항생제의 효과나 효능을 무시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생제가 없었다면 인간의 평균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짧았을 거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항생제 역시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내성을 가진 세균에 더 강한 항생제, 그에 대한 내성, 더 더욱 강한 항생제.

 

그래서 누구는 항생제를 쓰기보다 세균에 대한 인체의 방어력을 키우고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면역력에 비중을 두고 항생제의 오남용을 피하자는 것이지요. 다른 누구는 세균의 차단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손을 깨끗이 씻거나 위생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병원균에 대한 접촉에 민감해합니다. 이 후자의 경우는 아무래도 항생제에 대해 좀 더 너그럽지요. 병원균은 죽여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호주에 와서 꽤나 놀라웠던 것은 사람들이 물을 자주 먹어댄다는 것이었습니다. 갈증이 나지 않는데도, 물통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틈틈이 마셔댑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몸속의 노폐물을 걸러내기 위해서 그런 거야. 디톡시케이션이지

 

제 생각엔 필요이상의 수분섭취는 신장에 부담을 주고, 혈류량의 증가는 심혈관계에도 좋지 않다고 보여지는데, 이 사람들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이물질의 배출에 더 큰 신경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에 물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위 이 음양식사법을 지켜서 혈압약을 끊었다는 분도 제 주위에 있습니다.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그 근거는 굳이 말하자면 음양이론인데, 별로 정치한 이론도 아닙니다. 낮은 양이고 밤은 음이니 물은 밤에 마시라는 것입니다. 낮에 마셔서 양의 에너지를 축내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반대로 얘기해도 말이 됩니다. 낮은 양이니 음양의 조화를 위해서 낮에 물을 마시고, 밤에는 음이 성하니 물을 마시면 안 된다고 해도 역시 그럴싸합니다.

 

누구는 항생제보다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더 낫다고 할 것입니다. 누구는 항생제의 효과를 중시할 것입니다. 물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먹는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적게 먹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의 논리와 이유와 근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자기 생각의 근거와 이유가 맞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에게는 동의할 수 없는 근거와 이유가 되기도 하고 서로 틀렸다고 비난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런 생각의 이유와 근거가 옳고 맞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가 이런 이유와 근거에 끌리는 사람이라는 것, 이것이 진짜 이유가 아닐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2010.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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