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소선재에서 2011. 5. 11. 21:05


월요일.
첫 출근 오전 11시 반. 퇴근 오후 네시반. 환자 딱 한명, 클리닉 주인인 카일리의 일곱살짜리 아들 엘리엇. 침을 놓으려고 했는데 엘리엇이 울고 불고 지랄발광을 하는 바람에 왼팔 척택혈에 하나 놓고 더 못 놓았다.
카일리가 칠개월짜리 딸 린지가 코가 막혔다면서 침을 놓아달라고 하길래, 공손에다 놓고나서, 비익을 놓으려고 침을 찌르니 이 칠개월짜리 애기가 응애~ 하고 비명을 지른다.
카일리가 수요일날 돈을 주겠다고 말은 하는데, 말은 하면서도 돈을 낼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지가 침값을 70불 내면 어차피 그 절반은 자기가 먹는 건데 말이지.
돈 낼 필요없다고 했다.
이래저래 짐정리하고 책상정리.
 
 
수요일.
출근 12시. 퇴근 다섯시. 오늘은 환자 한명도 없음. 벽에다가 트리커 포인트 차트를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그리고는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서류정리를 했다. 피자 두조각 데워먹고 컵라면도 먹었다. 카일리가 와서 클리닉 입구에 붙이는 싸인에 대해 얘기했다. 지역신문에 내 광고도 내 준다고. 그래봤자, 지 클리닉광고겠지만.
리셥셔니스트 바바라는 영국사람이다. 동양문화에 대한 호기심 내지는 호감. 스스로 인털리전트하다고 생각하는 백인들중에 이런사람들이 있지. 지적인 선망이랄까? 알고보면, 이것도 결국에는 지 욕심이지만.
그래도 어찌보면 내 사무실이 생긴 느낌이다. 책상 하나 베드 하나뿐이지만, 별 방해받는 것 없이 나 혼자 사무실에 고요히 앉아있는것. 어찌보면 내가 대학교때 꿈꿨던 모습이 아닌가?
산다는 건 감사하고 행복할 일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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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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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말한다. 열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직하고 신의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십실지읍 필유충신 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논어 공야장편에 나오는 말이다.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말이다.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니. 이 말은 공자는 공부하기를 좋아했다는 말로 이해될 뿐이고, 공자가 얼마나호학하는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근거로 인용될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조금 달리 생각해본다. 나는 이 말을 배우기를 좋....로 해석하기 보다는배우기에 보다 더 초점을 둬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의 얘기는 이렇다.

 

'배운다'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가르친다로 상정해보자. 물론,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가르침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의무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르친다는 것은 배운다의 다른 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좁은 의미의 가르친다, , 나의 앎을 다른 이에게 전수하는 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보기로 하자.

 

배운다의 반대말로가르친다를 상정하고, 여기에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는 공식을 대입해보면, ‘배운다 '가르치지 않는다' 내지는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가 된다.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곧바로배운다가 되지는 않지만, ‘배운다에는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포함이 된다. 배우는 것은 모르는 사람의 행위이고, 모르는 사람은 가르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에 인용한 공자의 말에 대입해 보자.

 

나만큼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가 된다.

 

나는 여기서 우리의 삶을 본다. 우리는 평생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산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상사는 부하를, 부하는 상사를, 나는 남을, 남은 나를, 우리는 끊임없이 남을 가르치고 가르치려 하고 가르쳐주고 싶어하면서 산다. 우리는 왜 그렇게도 가르치려 하는 것일까?

 

나는, 공자는 가르치려 하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자는 당시 매우 유명한 스승이었다.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막강한 선생이다. 그가 이렇게 힘있는 스승이 된 것은 그가 누구보다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기때문에 뛰어난 스승이 되었고, 남을 가르치려 하기 보다 자기의 무지에 대해 배우려고만 했기 때문에 시간을 뛰어넘는 스승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만큼 가르치려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는,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자는 결코 남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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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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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호 2010-11-08 (월) 09:27
그러니까, '나는 못깨달았다'는 말에도 역시,
'깨달음'이 여기 아닌 다른 곳, 다른 사람의 일이라는 생각이 있는 거군요.
다시말해, '깨달음'이라는 그 어떤 권위 내지는 기존의 관념에 종속,지배당해있는
거라는 거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인지 아닌지 쫌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깨달았다 못깨달았다가 아니라, 깨닫지못했다라는 관념속에 들어있는 그러니까, 외부의 권위에 눌려서,아니, 외부의 권위에 종속되어서는, 아니, 거기에 세뇌되어서는, 뭐 그런건지.... 좀 더 생각을....

음.. 하여튼 요잔님 감사드립니다. 


막 울화가 치밉니다
글쓴이 : 요잔 (나눔지수:3040점) 날짜 : 2010-11-08 (월) 00:49 조회 : 47
글주소 :
오스카 멤버가 이제 열 명 남짓인데
그 중에 깨닫지 못한 분이 무려 세 명이나 계시는군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말을 안할 뿐이지 나머지 분들도....
 
이건 뭐,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믿는 것보다 더 확고한 믿음입니다. 
 
제가 명상계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분들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분들로부터 완전히 무시당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나는 깨닫지 못했다."는 이 믿음!
선언에 가까울만큼 확고한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요?
깨달음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의심과 회의를 갖고 있으면서
"나는 못 깨달았다"는 생각은 어찌 그리 확고하신지요?
도대체 근거가 무엇입니까?
 
P.S:
"그럼 너는 깨달았냐?"
이런 등신같은 질문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막 울화가 치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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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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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된 읽을거리가 귀한 이곳, 오랜만에 책 한권이 손안에 들어왔다. 노무현의 자서전으로 나온 운명이다’.  많은 부분은 예전에 접한 텍스트라 새로운 부분은 많지 않았다. 퇴임 후 서거에 이르는 부분은 가슴이 아파 읽기가 힘들었다. 그가 스스로 말한 참여정부의 는 주목할만 했다. 한미FTA나 대연정제안, 이라크파병과 양극화, 비정규직문제에 관한 그의 소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2000년들어 2010년까지 10년동안 한국사회의 가장 큰 뉴스는 무엇일까? 나는 주저없이 노무현의 대통령당선과 그의 죽음을 들고 싶다. 노무현은 그가 대통령으로 있었던, 정확히 말해 대통령후보가 된 2002년부터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2009년까지 한국사회를 비추는 거울역할을 했다. 그것도 거의 모든 것을 비춰내는 거울이었다.

 

그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많은 모습들이 비춰졌다. 익숙하다고 넘겨버리고 세상은 그런 거라고 지나쳐버린 것들이 노무현에 의해 질문되어졌다. 그의 존재 자체가 질문이었다. 노무현도 그냥 그렇게 살면 좋으련만 이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세상사람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지 않았다.

 

이런 질문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냥 대통령이 알아서 하면 좋을텐데, 대통령은 국민이 대통령이라며 묻고 묻고 또 물었다. 사람들은 피곤했다. 지쳐갔다. 당신에게 표를 줬으니 이제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인데, 노무현은 그렇지 않았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날 밤이 기억난다. TV속의 노무현은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물었다. ‘이제 제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사람들은 잠시 주춤하더니, 곧이어 감시. 감시라는 단어를 연호했다. 나중에 노무현은 이때의 반응을 굉장히 섭섭하게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단지 자기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는 당신 혼자 알아서 하라는 것이 서운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질문을 받는 것만도 피곤한데, 그 질문은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도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노무현의 질문은 생각을 해야 했고, 그의 말은 사람들의 욕심과도 충돌했다. 더군다나 하이에나언론들은 노무현을 물어뜯기 바빴다. 사람들은 세상이 시끄럽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이에나언론과 그 뒤에 한국을 쥐고 흔드는 무리들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시끄러움의 원인이 계속 질문을 던지는 노무현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원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10%정도되는 노무현 최후의 지지자를 제외하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노무현탓을 했다.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미에프티에이를 추진해서? 대연정을 제안해서? 미국의 용병으로 이라크에 파병해서? 부동산값이 올라서?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피곤했던 것이다. 존재자체가 질문인 노무현이 피곤했고, 참여를 요구하는 참여정부가 피곤했다.

 

사람들은 말로는 자유을 요구하면서, 자유의 필수요건인 판단과 책임은 지기싫어한다. 사실은 자유로운 삶을 살기가 싫은 것이다. 입으로는 자유를 떠들지만 사실은 다른 이들이 시키는대로 다른 이들로부터 주어진 틀안에서 사는 것이 편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자유인줄 안다.

 

이런 사람들에게 노무현과 그의 정부는 자율을 얘기하고 분권을 얘기했다.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과는 여기에 있다. 자유롭게 살기 싫은 사람들은 그래서 노무현을 죽여버렸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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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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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11월은 잊을 수 없는 달이긴 하다. 웨스트 라이드 집 베란다에서 시끄러운 아들레이드스트리릿을 내려다보며, 나는 깨달음을 완전히 포기했다.

2.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들이 스스로를 대단한 진보로 아는 경우가 있다.

보고 있으면 웃기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그렇다. 웃기는 이유는 그이들의 허황된 자기자랑이 우습고, 애처로운 이유는 그 겁장이들이 폼잡고 용감한 척하는게 불쌍하기때문이다.

하기사, 어디가서 자기를 알아달라고 하겠는가? 그 잘난 것 없고 겁많은 불쌍한 중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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