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명이 여러 지랄을 하고 있다.

첫째, 회사 대표이사의 마누라의 엄마가 죽었는데 그 장례식이 회사에서 논의된다.

둘째, 그 결과 장례식에 관해 직원들간의 업무분장이 결정된다.

셋째,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대표이사 마누라의 엄마 장례식에 근무시간에 참석한다.

넷째, 뿐만 아니라, 장례식일도 한다.

다섯째, 그 일을 40시간이상 잠도 안 자고 한다.

여섯째, 근로복지공단의 '장례식으로 인한 과로사'는 업무와 관계가 없다는, 당연한 결정이 실상은 억울한 결정이 되어버린다.

일곱째, 법원은 이러한 억울한 결정을 뒤집어주긴 하지만, 한편으로 사장마누라의 엄마 장례식이 바로 회사일이었다는라는 말도 안되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해버린다.

여덟째, 아무도 이 지랄이 지랄인줄을 모른다.

아홉째, 따라서 이 지랄이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열번째, 지랄이 지랄이 아닌 나라, 바로 지랄같은 나라이다.






“장례식장서 일 도와주다가 사망하면 업무상 재해”


회사 대표이사의 장모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받는 등 장례 절차를 진행하다 쓰러져 숨진 40대가 업무상 재해판결을 받았다.

서울행정법원은 10일 회사 대표이사 장모의 장례식에 갔다가 숨진 박모씨의 유족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씨가 회사 결정에 따라 장례식 업무를 맡았고, 회사는 장례 지원을 위해 임직원들에게 근무시간에 장례식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박씨의 장례 절차 진행은 업무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연일 계속되는
초과근무로 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장례식을 총괄하면서 40시간 이상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1000명이 넘는 조문객을 안내하는 등 과로와 스트레스가 박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영화제작사 총무팀장이던 박씨는 지난해 대표이사 장모의 장례식장에서 례절차를 총괄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박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인정을 신청했지만 공단 측이 대표이사 장모의 장례식 업무는 사적인 것으로 업무와 관계없다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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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
이 영어얘기를 보고 있자니 남의 얘기가 아니다. 영어잘하는 내 동생은 과연 어떻게 느끼는지? 밑의 링크따라 시리즈를 다 볼 일이다.

http://kr.blog.yahoo.com/doorieclinic/3739

미국에서의 이야기는 아주 간단히 하고 인수위얘기로 넘어갈 요량이었는데 싣니보이가 눈치를 채고 코를 걸었다. 정말 하기 싫은 얘기인데.. 아 띠바. 근데 괜찮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해외 이민자들의 공통된 아킬레스건, 밝히지 못하는 비밀, 끙끙 앓는 속병이니까.

6. 삼십대 중후반. 미국에 왔다.
온지 일주일정도만에 혼자서 Social Security 사무국에 갈 일이 있었다.

며칠전 신청했던 소셜시큐어리티카드의 넘버가 먼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뚝뚝하게 생긴 뚱뚱한 흑인여자.. 번호를 미리 알려줄수 있겠냐고 했더니 그 여자가 퉁명스럽게 짧은 영어를 내뱉는데.. 근데 그걸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듣기에는 ‘대리벗?’ 이었다. 대리벗? 대디버드? 아빠새? 이게 무슨 소릴까? 번호를 알려달라는데 왜 아빠새냐고 묻는걸까? 몇번이나 아임쏘리를 반복했지만 그 여자는 여전히 ‘대리벗’이었다. 혹시 래리버드? 이년이 착각을 해서 내 이름이 래리버드냐고 묻는건가? 마이네임이즈..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이 웃으며 쳐다본다. 아 이 띠바뇬.. 미국 공무원들 다 친절하다더니..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좀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거나 다른 말로 설명을 해줘야지.. 결국 그 여자가 귀찮고 한심하다는 듯 표정으로 종이에 써준다. 그건 놀랍게도 “Date of Birth” 였다. 단 세단어로 구성된 영어를 난 전혀 못 알아들었다. 놀멘놀멘 여행다닐때의 영어와 현실영어와는 천지차이가 있다는 걸 처절하게 깨달았다.

크게 기가 죽었다. 고주몽에게 물어봤다. ‘넌 얼마나 지나서 귀가 열렸냐?’ 고등학교 졸업하자 마자 미국에 왔던 친구다. ‘종일 햄버거가게에서 일하고 남는 시간 티비보고 했더니 한 육개월쯤 지나니까 귀가 열리더라. 근데 넌 지금 나이가 많으니까 한 이년은 걸릴거다.’ 어린이 대상 교육방송을 보는 게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텔레터비 같은 유아용, 취학이전 어린이용 교육프로그램을 많이 봤다.

영어를 배우러 Adult School에 갔다. 선생 한명이 내게 유아용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그걸 설명하랜다. ‘버터플라이 이즈 플라잉..’ 텔레터비에서 보고 들은대로 했다. 오케이.. Beginner Class로 가라고 한다. 그 교실로 갔다. 근데 그 반, 맨 노인네들 투성이었다. 선생이 종이 한장을 주면서 내용을 기입하랜다. 신상정보 같은 것들이었다. 이름 나이 학력 주소.. 그걸 읽어보던 선생이 다시 내게로 온다. 4-year college졸업한 거 맞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다른 반으로 가야한다며 날 다른 반으로 보냈다. Intermediate Class였다. 중간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제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실력으로는 초심자반인데, 꼴에 학력은 높으니 중간반에 넣어준다는 거 아닌가. 
초심자반 교실로 들어서는 날 신기한 듯 쳐다보던 노인네들의 눈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한 삼년정도 열심히 하면 영어 잘하겠지. 삼년이 지났다. 영어는 여전히 안된다.
삼년이 더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그래서 삼년이 또 지났다. 근데 여전히 안된다.
그래 또 삼년이 더 지나면 나아지겠지. 삼년이 또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안된다.
(구체적인 과정과 내용들은 생략한다. 차마 알리기 어렵다.)

물론 지금도 처음처럼 그렇게 안된다는 건 아니다. 먹고사는 일에 관련된 영어는 그런대로 문제없이 하면서 산다. 문제는 자기가 익숙한 영어에서 벗어났을 때 발생한다.

① 재작년 오피스를 이사하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의 일이다.

일하는 일꾼들에게 이런저런 작업지시를 해야 했다. “여기에 구멍을 드릴로 요만하게 뚫어서 저쪽에서 온 선을 이리로 뽑아내고 일단 마무리를 한 다음 이것과 연결할 수 있게 준비를 하고, 다시 한쪽 끝을 다시 구멍을 집어넣어 저쪽으로 보내 거기서 다시 똑같이 작업하고, 벽의 마무리는 구멍이 요만한 커버를 사다가 막아야 한다.” 근데 이 얘기가 영어로 그럴듯하게 안되는 것이다. and 와 then이 무지하게 들어가는 짧은 영어.. 스스로 놀랐다. 이런 걸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아직도 문제가 있다니.. 근데 허긴 이런 영어 미국에 와서 처음 해보는 거였다. 한번도 안 해본 거라 당연히 안되는 거였다.

② 작년 씨애틀에 갈 때 중간 기착지 공항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사람의 줄이 짧은 식당을 찾아 섰는데 이름이 생소한 샌드위치 샾이었다. 샌드위치 가게가 원래 주문이 복잡한건 알고있었지만 설마 바쁜 공항내에 있는 곳에서 Custom Order가 있을리는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내가 빵 종류부터 선택해야 했다. 어쩐지 줄이 짧더라니.. 그러나 이미 늦었다. 주문하려다 말고 쪽팔리게 다른쪽으로 갈 수는 없다. 빵종류가 뭐뭐 있느냐고 물었더니 점원 년 무지하게 짜증난 얼굴이다. 마지못해 몇가지를 불러준다. 빵 문화권이 아닌 내게는 아무리 종류를 불러줘야 생소하긴 마찬가지. 다행히 귀에 들리는 게 하나 있길래 그걸 골랐다. 이번엔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을 고르란다. 예문을 불러달라고 하면 이년 확 신경질 낼거 같다. 얼핏 떠오르는 ‘페스트라미’를 고르자, 연달아 쏘스를 고르란다. 아 띠바 빵 한조까리 먹는게 왜 이리 복잡해.. 실물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정했다. 그 담엔 그 유명한 ‘레리쎈토메이로’ 다행히 아는 거라 문제없이 넘어갔다.^^ 그때 바로 뒤에서 주문 차례를 기다리던 아짐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 ‘양이 많아 보인다. 하나만 해서 노나먹자’ 양이 많긴.. 샌드위치 반쪽씩으로 모자라서 옆 피자집에 가서 피자 하나를 더 시켜먹어야 했다.

③ 첫 방문환자와 오래도록 얘기해야 하는 Intake가 지겨워서 그걸 다른 직원에게 맡겼다. 그러길 몇 달.. 그가 자리를 비우게 되어 할 수 없이 내가 다시 해야만 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앵무새처럼 술술 하던, 판에 박힌 말들이었는데 갑자기 뻐걱거리며 잘 안되는 것이다. 부서진 영어가 사정없이 튀어나온다. 머리속에 꾹 박혀 있었다고 생각했던 건데도 안 쓰니까 단 몇달 만에 술술 새어 나가버린 것이었다.

④ 보험회사의 직원 놈 하나가 우리 케이스에 대해 사사건건 말도 안되는 시비를 건다. 우리랑 관련된 사무실에 여기저기 공문을 보내고 지랄이다. 혹시나하고 관련 법조문을 꼼꼼히 조사했는데 그놈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아니 사실무근이 아니라 오히려 틀렸다. 근데도 중간에 끼인 변호사라는 작자들이 그놈의 요설에 넘어가 그놈의 말에 동조하기까지 한다. 환장할 지경이다. 법을 한다는 변호사넘이 보험회사 직원 나부랭이의 억지에 넘어가다니.. 근데 난 이걸 그들에게 설명할 재간이 없다. 이게 날 더 미치게 만든다. 한국말로 한다면 단 5분 안에 양측을 설득, 굴복시킬 자신이 있다. 근데 영어로 해야 한다면.. 솔직히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다행히 한 변호사가 끝까지 법정다툼을 해줘서 모든게 그 보험회사 시키의 억지라는 걸 밝혀냈다. 그렇지만 그렇게 법정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우리의 reputation은 커다란 손실을 입고 말았다. 한동안 그 새끼때문에 분을 삭이며 일을 처리하느라 무척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마음고생의 상당부분은.. 영어를 못한다는 자괴감이었다.


미국에서 살면 영어가 저절로 된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영어는 결코 안된다. 아니 피나게 노력해봐야 영어는 안된다. 뇌에 기록이 잘 되지 않는 나이의 사람들 얘기다. 자기가 꿈꾸던 수준의 영어는 결국 꿈으로 끝난다. 그저 겨우겨우 ‘먹고 사는 영어’만 할 뿐이다. 근데 이 먹고사는 생존영어라는 게 굉장히 제한적이다. 자기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서만 써먹는 영어다. 따라서 거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갑자기 반벙어리가 된다. 또 더 무서운 것은 아무리 먹고사는 영어가 능숙했다 하더라도 잠시만 멀리하면 곧 바로 먼나라 말이 되어버린다. 이민자치고 영어에 한 없는 사람 없다. 그 넘지 못할 까마득한 벽에 가슴을 짓눌리며 산다. 일년 365일을 그렇게 영어에 짓눌리며 산다.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연령층이 30대중반 이후가 다수라고 볼때 이들 늦은 이민자들의 직업은 거의 정해져 있다. 끊임없이 영어를 연마하고 공부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은 이들 이민자들에게는 애당초 무리다. 후다닥 현장영어만 습득하면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그런 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 모든게 다 영어때문이다.

그래도 초기엔 참 열심히들 한다. Adult School에 열심히 다니고, 일부러 적극적으로 미국인들과 대화할 기회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미국인들의 말이 조금씩 귀에 들어오고 내 의견을 떠듬떠듬 말할 수 있게 된다. 아 그렇구나 이렇게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근데 거기가 끝이다. 아무리 해도 그 이상 발전이 없다. 해도 해도 맨날 그 자리이다. 열개가 새로 들어가서 열한개가 빠져나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물론 하루 24시간 영어에만 매달린다면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팔자좋은 사람은 없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 치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영어를 금새 익힌 자식들을 선생삼아 집에서 좀 노력해보고 싶지만 이것들은 부모에게 염장만 지른다. 내 누구땜에 이 고생을 하는데 저 싸가지 없는 것이.. 저게 자식이야 웬수야?

이무렵 현장에서 먹고 사는 영어가 그런대로 해결되는 정도가 될때 사람들은 갈림길에 선다. 영어공부에 더 노력해 볼 것이냐 아니면 그냥 먹고 사는 데에만 매진할 것이냐. (물론 영어가 발전해야 사업이 유지되는 경우는 예외가 되겠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여기에서 영어에의 노력을 거둔다. 아니 노력을 거둔다기보다는 ‘해도해도 안되는 영어를 그냥 포기한다’고 하는 게 맞다. 자기 사업 운영하는 데 지장 없고, 청구서에 문제가 있을 때 전화해서 그걸 해결하고, 쇼핑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고, 어쩌다하는 여행에서 크게 불편하지 않게 다닐 정도가 되면 영어공부에 더 이상 목을 매달리고 싶지 않다. 너무 지겹기 때문이다. 해도 해도 안되는 영어,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다. 고급 영어가 꼭 필요하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고용해 쓰면 된다. 게다가 자식들이 자라 어려운 영어를 해결해주기 시작하면 이민자는 더더욱 영어공부와 담을 쌓게 된다.


한국에서 가족이나 친지가 올 때. 이민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게 바로 이거다. 한국에서 누가 오는거^^ 처음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너 영어 해봐’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다고 한다.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히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줄 알고. 나도 그런줄 알았다. 미국가서 살다보면 영어는 저절로 되는 줄 알았었다. 그러나 이민자의 99%는 당장 외국 식당에 들어가서 친지들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찾아서 대신 주문해 주는 것도 힘들다. 식당이나 음식에 관한 영어는 별로 해보지도 들어보지도 않았다. 영어와 문화가 딸려 그 간단해 보이는 것도 은근히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같이 여행이라도 하게 되면 문제는 시리즈로 터진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돌봐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하던 영어도 점점 더 안된다.

영어가 젤 안되는 때는 어떤 상황에서일까? 네이티브 백인과 대화할 때? 아니다. 영어가 가장 안 될때는 바로 한국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이다. 저 사람은 내가 영어를 꽤 잘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근데 난 아니다. 발음을 하더라도 좀 더 굴려야지, 말을 하더라도 좀 빠르게 해야지, 나 영어 못하는 거 눈치못채게.. 이러다 보면 영어는 더 안된다. 내딴엔 멋지게 말했지만 듣던 상대방이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아임쏘리?’하기 십상이다. 같이 있는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화끈화끈거린다.


영어가 큰 바다라면 이민자들은 바닷가 귀퉁이 손바닥만한 얕은 물웅덩이에서만 평생을 찰싹대다 마무리한다. 주민회의에 나가 열띤 토론을 한다거나, 커뮤니티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 전혀 없다. 이들에게 영어는 악몽이며 지옥이며 가슴에 응어리 진 천추의 한이다.

이런 이민자들에게 한국에서의 소식이 들렸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누구나 간단한 영어회화는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


영어 이야기 1
영어 이야기 1.5
영어 이야기 2
영어 이야기 4


Posted by 일호 김태경
,
요즘 여기서 살기 싫어서 한국갈 생각을 많이한다. 그럴때면 항상 대두되는게 자식의 교육문제. 사랑하는 내 자식을 쓰레기같은 한국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는 않고, 그렇게 하자니 그럼 여기서 살아야 하고 나는 내 애기를 나와 얘기가 통하는 자식으로 키우고 싶은데, 모국어를 어떤 걸로 심어주느냐도 문제.
아~ 쉽지않은 문제다.





'자식교육' 때문에 미국에 왔습니까?
2006/11/01 오 전 7:46 | 요팡생각

자식교육이 뭐길래.. 사람들은 이산가족을 자청하고, 전 가족이 짐을 싸서 미국으로 캐나다로 호주로 떠난다. 이거 자식교육 때문인지, 잘하는 짓인지 한번 보자.


(고등학교의 시설이 이 정도이니 내 자식 보내고 싶기는 하겠다)


먼저 이산가족이다. 다음 네가지 정도의 부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 한국에서 범법행위가 있은 후 돈을 급히 빼돌리고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튄 경우. 현지에서의 생활이 상당히 여유로운데 오래도록 한국을 방문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이 부류이다. 이런 사람들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

둘째, 부부간에 불화가 잦아 각방을 쓰면서 사실상 별거를 하고 있었는데, 이혼을 하자니 애들에 미칠 영향도 걱정되고 남의 이목도 있어서 망설이다가 그 탈출구를 애들 조기유학에서 찾은 경우. 믿기 싫지만 애환의 기러기 아빠의 대부분은 이 사례다.

셋째, 집에 돈은 넘치게 많은데 아이가 꼴통이라 한국에서는 대학가기가 애당초 글렀고, 그래서 미국에 가면 최소한 영어는 하지 않겠나라는 막연한 기대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경우. 아이들의 한국 출입이 잦고, 문제는 엄마도 철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엄마부터 탈선하기 십상이다.

넷째, 해외 지사 근무로 1-2년 나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아빠만 돌아가고 엄마와 아이들은 남는 경우. 아이들이 미국교육제도에 적응해서 한국으로 가기 싫어한다는 표면상의 이유이지만 사실 숨어있는 진짜 이유는 복잡한 가정 문제다. 정작 아이들은 친구들이 많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엄마가 나서서 교육을 들먹거리며 아빠만 돌려보낸다. 귀찮은 남편과 꼴보기 싫은 시댁식구들이 없는 미국은 엄마들에게 천국이다.


이거 보슈.. 이런 비정상보다는 그래도 평범한 케이스가 더 많지 않겠소?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면 평범한 가정에, 아이들이 그런대로 학교공부에 따라가고는 있지만 좋은 대학은 어렵다고 느껴지는 경우, 아이들 학자금으로 모아놓은 돈도 조금 있고, 게다가 부모가 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선진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서 자기가 희생하면서 이산가족이 되는 경우.

또는 아이가 아직 어릴 때 몇 년만이라도 미국에 가서 영어를 습득하게 하기 위해서 무리를 하더라도 아이와 엄마가 한국을 떠나는 경우.

유학이나 지사근무 나왔다가 가족 전체가 눌러 앉는 경우 등등, 이렇게 정상적이고 교육적인 경우가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거의 드물다. 부부가 떨어져서 생활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평범한 부부관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조기유학과 이산가족은 엄마들이 결혼 생활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아이들의 유학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탈출구로 삼아, 나와 사랑스런 내 아이들만 외국에서 살고파서 이산가족을 만든 사례가 가장 많다. 무서운 여자들이다.


물론 부모는 한국에 남고 현지에 믿을 만한 친지가 있어서 아이를 그 집에 보내는 경우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이건 또 다른 문제들이 야기된다. 지금 해봐야 전혀 믿기지 않을 이야기이므로 이건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이야기 한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가족 전부가 이민을 가기도 한다.
아버지가 다니던 좋은 직장을, 그것도 전도가 양양한 상태의 직장을, 아이들 교육 때문에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간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결단코 다 거짓말이다.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남자들이 아이들 교육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그것으로부터 탈출한다. 아버지들에게도 이렇게 자식교육은 현실도피의 아주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아무리 젊어서부터 미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느니, 기회만 닿으면 기필코 선진국 미국에서 살아보고야 말겠느니, 우리 아이들만은 선진교육을 받게 해야 하느니.. 해도 사실은 한국에서 더 이상 발붙이기가 어려워 떠나는 경우가 절대 대부분이다.

식당을 해야하나.. 빵집을 해야하나.. 에이 띠바, 어차피 그런 일 할 바에야 미국에 가서 그런 일 하자. 일석이조 아니냐.. 이렇게 결정한다. 그러나 겉으론 역시 아이들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니 쪽 팔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낙오하고 밀려나듯 떠나는 자기 자신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주입한다. 니네들 교육을 위해서 엄마아빠가 모험을 하는 거란다. 씨바. 아이들만 존나 부담된다. 우리땜에 아버지가 희생하는거래.. 띠바.

아버지들, 치사하다. 밀려 나가면서 핑계는 아이들을 대고 아이들에게 부담만 잔뜩 준다.



그래 좋다. 미국에 왔다. 그러나 미국생활, 결코 만만치 않다.

미국에선 부부가 거의 하루종일 일을 해야 겨우 먹고 살고 아이들 교육시킨다. 남편만 나가서 일하고, 부인은 정원 넓은 예쁜 집에서 가사 돌보고 아이들 챙기고.. 이건 미국생활 십년이상 지나 운 좋게 자리를 잡은 후에나 가능할까 말까한 소설 같은 이야기다.

또, 죽을 때까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언어 장벽은 상상 이상으로 인생을 짓누른다. 반벙어리신세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겠지.. 웃기는 얘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말만 잊어먹고 영어는 하나도 발전이 없다. 영어만 좀 잘 했어도.. 매일매일 매시간 매시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분을 삭인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이민초창기, 한국에서의 폼잡기 좋아하던 생활습관은 좀처럼 버리기 어렵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이민가정들이 미국에 오자마자 소위 ‘폼나는’ 집에 들어가고 ‘폼나는’ 사업체를 찾는다. 누가 한국에서 와서 내가 뭐하는지 보게 될일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미국생활에 도움과 조언을 주던 사람들과도 슬슬 부딪히기 시작한다. 사사건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싫다. '난 너하곤 틀려'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다. 고립의 시작이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온건데 엄마라도 꼭 집에 남아서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 경제적으로 무리가 되는줄 알지만 엄마들은 집에 남는다. 결국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모두 소진하고 난 다음에야 현실을 깨닫는다. '아 그때 그 사람 말이 맞는구나..' 그러나 늦었다.


자.. 이제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시급해졌다. 이제서야 내가 내 몸을 던지게 되었다. 좀 일찍부터 이렇게 했더라면.. 후회하지만 소용없다. 먹고 살기 바쁜 부부가 하루종일 집을 비우다 보니 아이들에게 소홀해 진다. 당연히 가정교육이 실종된다.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아이들을 야단치기도 미안하다. 가정교육이 없으니 아이들은 비뚤어지기 십상이고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미국 문화를 전혀 모르고 영어까지 전혀 안되니 점점 아이들을 컨트롤 할 수가 없다. 눈이 뒤집혔을 때 고함 지르고 매를 드는 것에만 익숙한 부모는 가끔 경찰서로 끌려가기도 한다. 거기 한번 다녀오면 부모자식간은 거의 끝장이다. 몇대 맞았다고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하는 자식을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용서는 물론 이해도 안된다. 이 천하의.. 그러나 가정교육이 결핍되어 정상적 사고가 결여된 이민가정의 어리버리 아이들은 야만적으로 매를 드는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해 콩밥을 먹인 것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영어도 못하고 소리만 지르는 부모를 점점 더 무시한다. 툭하면 '내가 누구때문에 여기와서 이 고생을 하는데..' 넌덜머리가 난다. 한국식 사고방식과 자식교육의 망령에 계속 쳐져있는 부모와 사사건건 충돌하며 결국 부모를 적대시하게 된다.

가장 눈꼴 사나운 것중의 하나는.. 별로 미국에 오래 살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집 아이들이 더욱 미국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을 흉내낸다. 갈수록 한국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꼴보기 싫은 부모와 외계인처럼 지내기 위해서이다. 부모자식간이 딴게 아니다. 그저 웬수지간이다.



아무리 핑계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식교육’이 미국땅에 오게 한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인데, 이건 자식교육을 오히려 망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식교육 때문에 미국 오겠다는 사람 있으면 내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 말릴겁니다’
이 탄식은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험한 사람들의 십중팔구다. 당신 주변에 미국에 이민가서 교육 잘 받고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사회생활하는 가정이 있으면 그게 십중일이다. 아무리 힘들어 보여도 한국에서 일정부분 교육을 해결하고 철 들었을때, 꼭 '보내야 할 아이들'만 유학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어쩌랴 벌써 미국에 온걸..
아이들 빗나가지만 않았어도 일단은 대성공이다. 미국생활 삼사년안에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초조해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집 경우는 남들하고 다르다는 생각을 빨리 버리고 생활전선에 하루라도 빨리 뛰어들어야 한다. 아이가 혼자서 집에 있을 나이가 되었다면 엄마도 무조건 나가 일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에 적응하고 미국을 알아 간다. 집에만 있으면 죽을때까지 미국을 모르고 겉 돌다가 만다. 우울증에 괴롭힘을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이들 교육? 둘째 문제다.
우선 미국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근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다 잘 풀릴거니까.. ^^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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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LA에 사시는 분이 쓴 글이지만, 미국LA를 호주시드니로 바꿔도 과히 틀린 것 없으리.


http://kr.blog.yahoo.com/doorieclinic/766

요즈음 들어 충격적인 존비속 살해사건이 이곳 LA지역 한인사회에서 빈발하고 있다. 대부분 아버지가 가족을 살해하고 자기도 같이 자살한 사건들인데, 지난 3월 이후 한달여 사이에 4건이나 발생, 총 10명이 사망했으며 이중 미성년 자녀가 5명 희생됐다.

이런소식을 연달아 들으면서 이거 여간 착잡한 게 아니다.
내가 주변에서 흔히 보던 평범한 한국남자들이 그런 끔찍한 짓을 감행하고 있게 때문이다.

그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게 되었을까?
이민사회에 영원히 적응하지 못하는 아버지들의 이런 방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첫째, 몰락한 지위와 빼앗긴 주도권
아버지라면 꼼짝 못하던 어린 자녀들이 미국식 교육을 받으면서, 남편이라면 꼼짝 못하던 순종적 아내가 미국사회에 젖어 들면서, 한국에서 누리던 가장의 지위는 순식간에 몰락하고 만다. 한국식 가부장제에 익숙하던 한국남자들은 이렇게 리버럴하게 재형성되는 새로운 가정에 적응하기가 근본적으로 어렵다. 미국사회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영원한 언어장애인으로 밖에서 고생하던 남자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이다. 갈수록 가족들과의 관계는 소원해 진다. 점점 혼자만 외톨이가 되어버린다. 한국남자들은 일이 끝나도 쉴 곳이 없다. 게다가 여성도 일을 하는 이민사회에서 야금야금 가정의 주도권을 빼앗기면 여성에 대한 심리적 위축감으로 그 박탈감은 더욱 심해진다.

둘째, 자신감 상실, 강박관념과 불안감
한국과 같은 수준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남성들은 그들이 가졌던 최소한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한다. 한국서 소위 잘나가던 직업을 가졌었던 남자들이 미국에 와서 페인트공에 정원사로 일하며 겉으로는 ‘미국에 직업의 귀천이 어딨나’ 하면서도 심리적으로는 심한 박탈감에 고통받는다. 영원히 주류사회에 정착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도 더해진다. 남들 말리는데 유난 떨면서 미국까지 왔으니 꼭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은 최소한의 휴식마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셋째, 꽉 막힌 의사소통의 출구, 탈출할 비상구가 없는 고립
사회적 네트워킹의 부족,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언어 장벽 등으로 기인한 심리적 고립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남자들의 이민생활은 답답함 그 자체이다. 특히 소주잔 한 잔 기울이며 답답한 속마음을 툭 터놓을 친구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섬처럼 완전히 고립된 이민사회에서 또 다른 고립감이다. 소통이 단절되고 사회적 관계가 사라진 한국남자들은 사회적 기형아가 되어간다.

넷째, 군중속의 고독감
사회적 단절감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골프모임, 종교모임, 동문회 등 다양한 경로를 찾아 다니며 표면상 나름대로 소통의 통로를 찾는 듯 보이지만 한국남자들은 늘 공허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나이 들어 억지로 형성한 그 모임이란 것에서 애당초 건전하고 즐거운 사회적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모임에서 얻는 상대적 박탈감은 또 하나 스트레스 제공원이 된다. 참석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참석하면 기분이 더욱 나빠진다. 그러나 도태되는 느낌이 싫어 다음주에도 또 모임에 참석한다.

다섯째, 경제권 상실과 배신감
그런대로 경제 사정이 좋을 때는 부부간의 문제나 가족간의 사소한 문제가 봉합되다가도, 경제사정이 나빠진 때에 한 번 악화를 걷기 시작하면 가족의 붕괴는 걷잡을 수 없이 이뤄진다. 아이들은 엄마와 만 대화를 하려 하고 아버지는 집안에서조차 늘 이방인이며 외톨이다. 돈 못 벌어서 무시당한다는 심리적 열등감과 배신감을 힘의 과시로 위장하려 물리적 폭력을 집안에서 행사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리적 힘의 행사는 곧바로 철창행.. 가족관계는 영원히 끝이다.


미국 속 한국남자들은 이런 고통스런 현실을 피해 매일매일 한국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어린 시절, 젊은 시절 꿈이 있고 친구와 가족과 낯익은 풍경들이 있는 고향으로의 귀향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다.
가면 뭘 먹고 사나, 실패하고 돌아온 나를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아이들 학교는 어떻게 하나..
알카트레즈 탈출보다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들은 또 다시 매일 좌절한다.

불안감과 강박관념,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 자격지심과 열등감, 그리고 참기 어려운 배신감과 고립감 그리고 매일매일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죽일놈의 좌절.

미국 속 한국남자들은 서서히 정신적 공황상태로 빠진다. 이런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어느 날 개인의 실패를 절감하거나 가족들의 배신에 격분하는 순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극단적 절망에서 동반자살을 감행하거나, 복수심에 가족을 살해해 버리는 것이다.

미국 속 한국남자들.
씨바 이렇게 산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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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mmunity.hani.co.kr/board/view.html?board_id=cm_together1&uid=250511


의사와 한의사들의 논쟁, 정확히 말하자면, 의사들의 한의학에 대한 무시는 한 두번 겪는 일이 아니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도그마란 것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는 실례이다.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떤 기반위에 놓여있는지 그걸 알려면, 자신의 앎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앎의 기반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철학을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앎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런 훈련이 안 된 사람에게는 연목구어일뿐이다.

더군다나, 그 앎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더 지난해지니, 생각이란 걸 할 줄을 모르는 의사나 의대생들은 도저히 한의학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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