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칼럼이다. 나는 그동안 궁금했다. 왜 노무현이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다 욕을 먹는지 말이다. 저쪽에서 욕하는 거야 그러려니 하는데, 이쪽에서도 다들 싫어했다. 고종석은 그걸 두고 '배신'때문이라고 한다. 글쎄, 그가 얘기했듯히 '전면적이지 못한 배신'을 배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들은 노무현에게서 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건 '실망'이라고 해야한다. 그게 맞다.
어쨌거나 고종석의 칼럼은 어느정도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왜 이쪽에서도 노무현을 싫어하는지 말이다.
나는 2002년 12월 19일 저녁 6시 나는 만세를 부르며 단 하나만 바랬다. 노무현이 제발 조선일보에 타협하지 않기만을 말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것 단 하나. 그리고 노무현은 지금까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고종석 칼럼/2월 21일] 노무현 생각

며칠 뒤면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지지한 사람이든 반대한 사람이든, 노무현 시대에 점수를 후히 매기는 것 같진 않다. 무엇보다, 지난해 말 대통령선거에서 구여권 후보가 겪은 참담한 패배에는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얼마쯤 반영돼 있었다.

그가 취임하기 직전, 나는 대통령 노무현의 가장 큰 업적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일 수도 있다고 쓴 적 있다. 새 대통령의 발걸음에 딴죽을 걸겠다는 악의로 한 말이 아니라, 소수파의 호민관으로서 대한민국 제1시민 자리에 다다른 정치역정을 기린 말이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 처지에서 보면 아쉽게도,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이 된 것 이상의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일반 시민으로 돌아올 참이다.

■ 리버럴 진영의 트로이 목마

힘센 사람들을 향한 노 정권의 투항이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된 세 해 전, 나는 어느 글에서 노무현이 트로이목마일지도 모른다고 비아냥거린 적 있다. 복고주의자들이 리버럴리즘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보낸 트로이목마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비아냥거림을 뉘우칠 계기나 기회를 그 뒤에도 얻지 못했다.

노 정권 5년간, 서울 강남을 지역적 이데올로기적 고리로 삼은 재벌-관료 동맹은 그 전보다 더욱 튼튼해졌다. 그리고 이 신성동맹은 곧 출범할 이명박 정권에서 만세동락을 구가할 모양이다.

노무현은 힘센 친구를 새로 얻기 위해 힘없는 친구를 버렸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배신이 또렷해진 뒤에도, 그 배신으로 이득을 본 세력은 그의 친구가 돼 주지 않았다.

노 정권 덕분에 재산을 단단히 불린 땅 부자들, 집 부자들, 대자본가들은 5년 내내 노무현을 저주했다. 옛 친구를 버리고서도 새 친구를 얻지 못함으로써, 다시 말해 모두를 적으로 돌림으로써, 노무현은 기이한 방식으로 국민통합에 기여했다.

노무현이 사면초가에 놓인 이유 하나는 그의 배신이 전면적이지 못했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권력을 시장에 헌납함으로써 노무현은 과감히 경제적 강자 편을 들었으면서도, '민주화세력'이라는 자신의 상징적 기득권은 포기할 뜻이 없었다. 소위 '과거사 정리'라는 것은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이 욕망과 관련 있었을 테다.

그런데 이 '과거사 정리'는 그가 버린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과 별 관계없는 '정권의 취미'로 보였던 데 비해, 그가 새로 친구로 사귀고자 했던 힘센 사람들에게는 제 존재의 기반을 건드리는 민감한 문제였다.

다섯 해 전 새 대통령을 뽑을 때, 한국 유권자들 마음 속에선 윤리적 욕망이 파닥거렸다. 지난해 말 새 대통령을 뽑을 때, 그들 마음속에 윤리적 욕망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큰 것이 자신의 행태였음을 노무현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탈-윤리 대통령 이명박은 윤리 대통령 노무현이 다섯 해 동안 진화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래도록, 한국 유권자들은 정치적 결정에 윤리가 끼어드는 걸 꺼릴 것이다.

■ 윤리적 출발, 탈-윤리적 종말

공정함을 위해서, 적대적 언론의 반노 선동이 커뮤니케이션을 왜곡해 정권을 고립시켰다는 대통령과 그 주변의 하소연에도 일리가 있었음을 지적해야겠다. 정파 신문들이 판치는 한국 저널리즘 시장에서 노무현에게 호의적인 매체는 드물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권에 대한 여론 악화를 크게 거들었다.

새 대통령 당선자나 인수위의 최근 천둥벌거숭이 행태를 노 대통령이나 그 주변사람들이 벌였다면, 정권이 뒤흔들릴 정도의 십자포화를 언론으로부터 받았을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시대를 평가할 뒷날의 역사가가 이 시대 신문들을 사료로 쓰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글까지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노무현과 노무현 시대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조차, 노무현이 실패한 대통령이었음은 엄연하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선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을 드러내는 이유?  (0) 2008.09.03
민족과 나  (0) 2008.08.19
[펌]이런 것이 진짜 코메디  (0) 2008.08.12
삶의 끝에 있는 것  (0) 2008.04.26
[펌]욕망의 무한한 힘, 한겨레에서  (0) 2008.04.16
Posted by 일호 김태경
,
빨간색으로 되어있는 부분. 난 정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검사라는 인간이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다고 얘기한다. 정말 코메디야 코메디.


/////////////////////////////////////////////////////////////////////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 정부는 12일 광복 63주년과 건국 60년을 맞아 경제살리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화합과 동반의 시대'를 열기 위한 34만여명 규모의 특별사면ㆍ복권 조치를 단행했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이번 사면은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해 실시했다"며 "경제인들이 활발하게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해외시장을 개척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법무부 차동민 검찰국장과의 일문일답

--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경우 죄질도 좋지 않고 사회봉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사면 대상에 포함된 이유는

▲대기업 사면의 경우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 여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투자 활성화 해외시장 개척, 일자리 창출이 절실하다는 점을 고려했다. 정 회장의 경우 사회봉사 명령 300시간 가운데 200시간 사회봉사를 했는데 집행률이 3분의 2 이상이 되면 사면 대상자에 포함된다.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우 경제인으로 분류했나 폭력사범으로 분류했나

범행으로 볼 때에는 폭력사범이지만 본인의 지위를 감안해 경제인으로 분류했다.

-- 경제인을 대거 사면한 조치는 화이트 칼라 범죄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과 어긋나는 것 아닌가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한 사면은 법치주의와 어긋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면을 통해 경제살리기에 전력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 사면 기준에 추징금 납부 여부도 포함됐나

▲포함됐다. 또한 벌금 납부 여부도 기준이 됐다.

-- 대부분의 기업 총수들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자유롭게 경제활동 하고 있는데 사면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경제살리기에 기여한다고 말할 수 있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활동하는 사람의 경우 집행유예 기간이나 집행유예 기간이 경과된 이후에도 제약이 많다. 제약을 풀어주면서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 배임이나 횡령의 경우 기업 입장에서 치명적인 범죄인데 해당 총수에게 다시 경영권을 맡긴다는 것이 오히려 기업에 해가 될 수도 있지 않나

▲배임의 경우 계열사 증식이나 활성화를 위해 쓰인 경우가 많았고 또한 개인 착복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 정몽구 회장의 경우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배임을 했는데 그것도 기업을 위해서 배임을 한 것이라고 판단하나

▲답변하기 곤란하다.

-- 추징금 납부 여부도 고려했다고 했는데 추징금 납부 안된 사람이 포함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납부한 사람을 사면 대상으로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람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킨 전례가 있다.


--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은 경우 어떤 기준을 적용했나

▲경제ㆍ국가 발전에 기여한 정도, 피해회복 여부, 건강ㆍ건강. 나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jesus7864@yna.co.kr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연합뉴스 "올림픽 포토 매거진">

<실시간 올림픽뉴스는 LGT M-Sports와 함께 **7070+Ez-i>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Posted by 일호 김태경
,

시골의사 박경철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외과의사입니다. 한겨레에 들어가보면, 가끔 이 의사의 얘기를 볼 수 있습니다. 재테크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있어 내심 무시했는데, 그의 이야기는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죽음을 직접 맞닥뜨리는 현장에 있어서인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그의 인상은 둥글둥글하지만 그의 눈은 아주 매서워 보입니다. 죽음과 삶이 맞닿아있다는 것을 그 눈으로 잘 파악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두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한명은 돌아가신 아버지이고 또 한명은 이제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들녀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몸이 마르고 숨이 가쁘게 될 때쯤 칼로 손바닥을 찢기도 했습니다. 생명선의 끝부분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는 식도에 출혈이 있어서 시술을 받았는데, 그것이 간이 막혀서 피가 식도로 역류된 것이었다는 걸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간암이었습니다.

아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제일 예쁩니다. 지금까지 봤던 어떤 여자보다도 더 예쁩니다. 지금까지 봤던 어떤 그림, 풍경, 사진 그 무엇보다도 예쁩니다. 아들이 먼저 죽느니, 내가 먼저 죽는게 낫겠다 싶습니다. 이 책에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사람들의 얘기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자식보다 더 한 집착도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출가 직전 아들의 출생소식에 ‘라훌라’(장애물)라고 하신 것도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달 전에 같이 산에서 일주일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집에서 눈에 띄던 책을 가지고 갔었는데, 거기서 옮겨놓은 것입니다. 오늘 오랜만에 다시 찾아봤습니다. 의지할 곳은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생각입니다. 나무 아미타불.

//////////////////////////////////////////////////////////////////////////////////

절간이야기.22

어느 신도님 부음을 받고 문상을 가니 때마침 늙은 염장이가 염습(殮襲)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염습하는 모양이 얼마나 지극한지 마치 어진 의원이 환자를 진맥하듯 시신(屍身)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함이 없었고, 염을 다 마치고는 마지막 포옹이라도 하고 싶다는 눈길을 주고도 모자라 시취(屍臭)까지 맡아보고서야 관뚜껑을 닫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 한솥밥을 먹은 가족이라도 죽으면 시체라 하고 시체라는 말만 들어도 섬찍지근 소름이 끼쳐 곁에 가기를 싫어하는데 생전에 일면식도 없는 생면부지의 타인, 그것도 다 늙고 병들어 죽어 시충(屍蟲)까지 나오는 시신을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염장이는 처음 보았기에 이제 상제와 복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염장이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 보았습니다.
 
"처사님은 염을 하신지 몇 해나 되셨는지요?"
"그러시면 많은 사람의 염을 하신 것 같으신테 다른 사람의 염도 오늘처럼 정성을 다 하십니까?"
"별 말씀을 다 하시니... 산사람을 구별이 있지만서도 시신은 남녀노소 쇠붙이같을 것이 없니더. 내 소시에는 돈 땜에 이 짓을 했지만서도 이 짓도 한 해에 몇백 명 하다보니 남모를 정이 들었다 할까유. 정이....... 사람들은 시신을 무섭다고 하지만 나는 외려 산사람이 무섭지 시신을 대하면 내 가족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자신의 시신을 보는 듯해서......"
 
 이쯤에서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갈 길을 그만 가야겠다는 표정이더니, "내 기왕 말씀이 나온 길이니 시님에게 한 말씀 물어봅시더. 이 짓도 하다보니 시님들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어떤 시님은 사람 육신을 피고름에 담은 가죽 푸대니, 가죽 주머니니, 욕망 덩어리라 이것을 버렸으니 물에 잠긴 달그림자처럼 영가(靈駕)는 걸림이 없어 좋겠다고 하시기도 하고, 어떤 시님은 허깨비같은 빈 몸이 곧 법신(法身)이라 했던가유? 그렇게 하고, 또 어떤 시님은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염불만 하시는 시님도 있고.... 아무튼 시님들 법문도 각각인데 그것은 그만 두시고요. 참말로 사람이 죽으면 극락지옥이 있니꺼?"
 
흔히 듣는 질문이요 신도들 앞에서도 곧잘 해왔던 질문을 받았지만 이 무구한 염장이 물음 앞에는 그만 은산철벽을 만난듯 동서불명(東西不明)이 되고 말았는데, 염장이는 오히려 공연한 말을 했다는 듯
 
"염을 하다보면 말씀인데유. 이 시신의 혼백은 극락을 갔겠다 저 혼백은 지옥에 갔겠다 이런 느낌이 들 때도 더러 있어 그냥 해본 소리니더. 이것도 넋빠진 소리입니더만 분명한 것은 처음 보는 시신이지만 그 시신을 대하면 이 사람은 청검하게 살다가 마 살았겠다 이 노인은 후덕하게 또는 남 못할 짓만 골라서 하다가 이 시신은 고생만 하다가 또는 누명같은 것을 못 벗고.... 그 뭐라하지유? 느낌이랄까유? 그, 그 사람이 살아온 흔적같은 것이 시신에 남아 있거든요?"
 
하고는 더 말을 하지 않을 듯 딸막딸막하더니, 당신의 그 노기(老氣)로 상대가 더 듣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었음인지.
 
"극락을 갔겠다는 느낌이 드는 시신은 대강대강해도 맘에 걸리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죄가 많아 보이는 시신을 대하면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눈시울이 뜨뜻해지니더. 정이니더, 옛사람 말씀에 사람은 죽을때에는 그 말이 선해지고 새도 죽을 때는 그 울음이 애처롭다 했다니더. 죽을 때는 누구나 다 선해지니더.  ...........  이렇게 갈 것을 그렇게 살았나? 하고 한번 물어보면 영감님 억천년이나 살 것 같아서, 가족들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한번 잘살아 보고 싶어서 그랬니더. 너무 사람울리시면 내 화를 내고 울화통 터져 눈 못 감고 갑니더. 이런 대답을 들으니 아무리 인정머리없는 염쟁이지만 정이 안 들겠니까? 그 돌쟁이도 먹 놓고 징 먹일때는 자기의 혼을 넣고... 땜장이도 그렇다 하는데 오늘 아침 숨을 같이 쉬고 했던 사람이 마지막 가는데유........... 아무런들 이 짓도 정이 없으면 못해 먹을 것인데 그렇듯 시신과 정을 나누다가 보면 어느 사이 그 시신 언저리에 남아 있던 삶의 때라 할까유? 뭐 그런 것이 걷히고 비로소 내 마음도 편안해지거든요. 결국은 내 마음 편안할려고 하는 짓이면서도 남 눈에는 시신을 위하는 것이 풍기니 나도 아직........"
 
하고는, 잠시 나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시님도 다 아시는 일을 말했니더. 나도 어릴 때 뒷절 노시님이 중될 팔자라했는데 시님들 말씀과 같이 업(業)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서...... 이제 나도 갈 일만 남은 시신입니더."
 
이렇게 말끝을 흐리는 것이었습니다.
 
조오현 스님의 연작시 [절간이야기.22]
 출처 : 화두와 실천. 1996 봄 제2호 P 172~173



Posted by 일호 김태경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81965.html

내가 전에 어머니한테 말한 적 있었는데, 자기 집값 오르길 바란다.

그런데, 그게 진짜 오른게 되려면, 다른 곳의 집값이 오르지말고, 자기 집값만 올라야한다.

그리고, 그 이익이 실현되려면, 집을 팔아야 한다. 그 집에 계속 살고 있는 한 집값이 오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결국, 집값이 오르는 걸 좋아하는 인간들은 다 투기꾼이라고 보면 되겠다.

왜 아니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82212.html
[김형태칼럼] 북한산에 입장료를
김형태칼럼
한겨레
» 김형태 변호사
전세계 국립공원 중에서 단위면적당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북한산국립공원이다. 연 500여만명, 제대로 집계하기도 쉽지 않단다. 공원쪽에 따르면 2007년 4월29일 오전 10시에서 11시까지 한 시간동안 도봉주능선에만 8231명이 매달렸다. 정비석은 ‘산정무한’이란 수필에서 금강산 비로봉의 아낙네 살결보다 흰 자작나무 바다며 마애태자 무덤의 쓸쓸함을 노래했지만 한가했던 옛 시절의 사치일 뿐. 이제 도봉주능선에서 보이는 건 끝없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몇 해전 삼지연을 거쳐 백두산에 올랐다. 천지를 노랗게 물들이며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낙엽송, 침엽수들. 끝없이 이어지는 원시림과 맑은 계곡물 … 사람은 그림자도 없었다. 돌아오면서 걱정이 들었다. 통일이 되면 이런 장엄한 풍광도 끝이겠지. 그런데 요즈음 인터넷 사이트에 가보니 벌써 ‘산악인을 위한 백두산 완전종주’를 내건 관광상품들이 수두룩하다. 지난 겨울 북한산 눈속을 내려오는데 덩치 큰 청년들이 쇠이빨 많이 달린 아이젠으로 바위를 콱콱 찍으며 지나쳤다. 좀 살살 다닐 수 없을까. 도봉산 포대능선의 바위들을 자세히 보면 겨우내 아이젠에 시달려 상처투성이다. 그들은 백두대간 종주가 얼마나 멋진지를 열심히 이야기했다. 백두대간도 이제 앞날이 뻔해 보인다.

작년초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한 뒤 산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길들이 수없이 새로 생기고 오솔길은 4차선 신작로가 되었다. 2001년에서 2005년 사이 대략 연간 1800만명 안팎이던 전국 25개 국립공원 입장객 수가 최근들어 2400만명 가까이로 늘었다. 북한산은 50%가량 늘었다는 말도 있다. 국회공청회 기록등을 보면 입장료 폐지는 다분히 정치논리에 의해 결정된 것 같다. 환경부등 폐지론자들은 이런 근거를 댔다. ‘국가는 국민들의 환경권과 여가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인공시설이 아닌 자연환경에는 수익자 부담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폐지의 근거로 든 ‘국민을 위하여’는 말 자체로는 멋지다. 그런데 말만 멋지다. 전라도 해남 뻘속 낙지가 어디 사람에게 먹히려고 이 세상에 났다던가. 온갖 길짐승이며 날짐승, 물고기를 칼로 자르고 삶고 튀겨먹으면서 ‘최고예요’,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무섭다. 그리고 어디 저 포대능선 바위가 내 아이젠에 찍히고 부서져 내리려고 저 하늘 중턱에 걸려 있단겐가. 백운대며 만장봉 그리고 그 계곡을 빨갛게 물들이는 진달래 무더기는 ‘국립’, 국가나 국민이 만든 게 아니다. 우리는 그저 바위며 진달래 눈치보면서, 미안해하면서 흔적없이 다녀올 일이다.

환경에는 수익자부담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잘못되었다. 산에 오르는 ‘국민’들의 여가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관리, 보전에 드는 비용을 받지 않으면 그 돈은 세금에서 나간다. 결국 산에 가지 않는 국민들도 산의 관리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니 형평에 어긋난다. 산을 있는 모습 그대로 지키려면 적정수준의 입장료를 받아 입산객 숫자를 통제하는 길 밖에 없어 보인다. 요즈음은 평일에도 등산복차림의 중년남자들이 길거리에서 많이 보인다. 간간히 젊은이도 있다. 자본주의 경쟁과 효율에 밀려난 이들에게 산은 고마운 안식처요 소일거리다. 그들에게 입장료를 내라는 게 가혹하긴 하다.

그래도 그 아들·딸들도 도봉산 소롯한 오솔길에 피어오른 노랑제비꽃을 보게 하려면 입장료는 어쩔수 없다. 만경대 바위와 계곡물, 진달래와 산벚을 향해 ‘국민’의 권리를 주장하지 말라. 그런데 ‘완전종주’가 시작된 저 백두산은 또 어찌하나.

김형태 변호사

Posted by 일호 김태경
,
http://www.hani.co.kr/arti/society/life/281978.html

뜸 명상 등 곁들여 스스로 고치게 ‘마음 수술’
[향기 나는 사람들] 대체의술 펴는 전홍준 원장

외과의로 독일병원 갔다가 침 명상 치료에 ‘새 눈’
환자에 도움 되면 뭐든 ‘통합’…‘신념요법’ 처방도
하니Only 권복기 기자
» 통합의학 펼치는 전홍준 의사.
전홍준(61) 하나통합의원 원장은 환자의 마음까지 고치고 싶어 합니다. 병의 발생과 치료에 마음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마음까지 고친다는 게 어떤 것일까요. 광주시 진월동에 자리한 하나통합의원을 찾았습니다.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나 오피스 빌딩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병원에는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9일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이지만 낮 12시가 넘은 시각에도 병원 안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10여 명이 넘었습니다. 전 원장은 “다른 지방에 사는 분들이 휴일이 아니면 올 수가 없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오전에 병원문을 열었다”고 말했습니다.

온갖 검사에도 아무 이상 없다지만 그래도 아프다면?

전 원장은 대구에서 온 50대 여성을 배웅하면서 “오늘 배운 것 집에 돌아가서 잊지 말고 꼭 하세요”라고 당부했습니다. 그가 그 여성에게 권한 내용은 뜸과 목욕이었습니다.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사지통증 등 온갖 증세에 시달리고 있지만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는 환자였습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는 온열요법과 흉선, 간, 위 등 면역 관련 기능을 하는 7곳에 뜸을 뜨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1시간 가량 상담을 하면서 특별한 ‘처방’도 했습니다. ‘신념요법’이라 이름 지은 방법입니다. 일종의 마인드컨트롤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전 원장은 이를 위해 환자가 찾아올 때마다 보여주는 글이 있습니다. 한 목사의 위장병 탈출기입니다. 죽만 먹어도 배가 아플 정도로 위장이 약했던 한 목사는 어느 날 성경을 보다가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시니 너희들은 이미 구한 것을 다 얻었음을 알고 감사하라’는 구절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위장병이 다 나았음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날 아침 다른 가족과 똑같이 밥과 반찬을 놓고 식사를 합니다. 결과는?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굴렀고 먹은 음식은 모두 설사로 나왔습니다. 점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는 성경 구절을 의심하지 않고 저녁 약속이 있던 뷔페에서 5접시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위장병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전 원장은 병원을 찾아온 환자, 특히 암환자에게 그 목사가 쓴 글을 보여주며 “건강하다고 믿고, 쉰다고 누워서 지낼 것이 아니라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살라”고 강조합니다. 그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장 상인인 그 여성은 얼마 전 화재로 재산을 잃고부터 그런 증세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 분에게 병원에 가서 검사해 봐도 병이 없다고 하니 그렇게 믿으시라고 했습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남을 돕는 일이라고 해서 돌아가거든 곧바로 봉사활동을 시작하라고 거듭 당부했습니다.”

서양의학, 장점도 많지만 썩은 물에 모기 생기면 살충제 뿌리는 식

전 원장은 이처럼 주사, 약, 수술 등과는 거리가 먼 방법으로 환자의 질병 치료를 돕습니다. 그는 환자에 따라 뜸, 생식, 겨자찜질, 운동, 단식 등 다양한 요법을 권합니다. 빛명상, ‘화해와 감사의 산책’ 등으로 환자 스스로 마음을 바꾸도록 합니다.

이처럼 전 원장이 하고 있는 특별해 보이는 의료행위는 보완대체의학 또는 통합의학이라고 불립니다. 그는 이를 “병원 중심의 질병치료의학인 서양의학과 다른, 생활 중심의 전인치유의학”이라고 정의합니다.

생활습관을 고치고 마음을 바꿔 ‘완전한 몸, 마음, 생명’을 되찾으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 생활 중심의 전인치유의학이 병을 고치는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에이비시디이(ABCDE)를 고안했습니다. 운동(Activity), 호흡(Breathing), 의식 활동 (Consciousness), 음식(Diet), 자연 및 사회적 환경(Environment) 등 이지요.

“제가 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이런 방법이 있으니 한번 해보시라고 권할 뿐이고 환자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전 원장은 서양의학이 장점이 많지만 주로 병증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병이 생기는 원인을 없애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유하자면 썩은 물에서 파리와 모기가 생기면 썩은 물을 정화하는 대신 살충제만 뿌리는 격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도 한 때는 한약 먹거나 쑥뜸 뜬 환자는 미신 따른다고 여겨

외과의사로서 그도 한 때 서양의학이 병을 고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한약을 먹거나 쑥뜸을 뜬 환자는 미신을 따른다며 혼을 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의사로 환자를 치료하면서 그가 철썩 같이 믿었던 서양의학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수술 뒤 암이 재발해 다시 입원한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1984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의대 방문은 의사로서 새로운 길에 눈을 뜨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농촌 의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이델베르크의대 방문은 그 분야에 앞선 독일의 제도를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700년의 서양의학 역사를 지닌 그곳에서 암 수술 환자나 만성 질환자에게 숯치료, 물치료, 침, 단식, 명상, 사혈요법 등을 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부터 대체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요. 86년 봄에는 일본에 침구의학을 부활시킨 이름난 외과의사 마나카 요시오 도쿄 기타사토대 교수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마나카 교수는 침구의 치료효과를 서양의학적 분석법으로 입증하고 이를 환자 치료에 적용해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마나카 교수는 저를 앞에 놓고 오랜 시간 강의를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말이 있습니다. 전깃불이 병증이라면 서양의학은 그 빛을 천으로 가리거나 아예 전구를 깨뜨려 버린다. 하지만 대체의학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스위치를 찾아내 살짝 건드리는 것만으로 전깃불을 끈다는 비유였습니다. 서양의학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지요.”

전 원장은 이듬해인 1987년 마나카 교수의 소개로 “홋카이도에서 기타큐슈까지” 일본 전역을 다니며 대체의학자로 거듭난 의사들을 찾아가 대체의학을 배웠습니다.

농촌 의료를 위해 전남 나주군에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그가 1년 동안 병원 문을 닫고 일본으로 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86년 마나카 교수를 만나고 돌아온 뒤 그가 일하던 병원에 말기 간암환자가 찾아왔습니다. 서울의 이름난 병원에서도 포기한 환자였습니다. 자신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읽고 있던 대체의학 책을 보여주며 “나도 해본 적은 없지만 한 번 해보겠냐”고 대체의학 방법 몇 가지를 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3달 뒤 그 환자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암세포 크기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것이었습니다. 6개월 뒤 그 환자는 완치됐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었습니다.

상담과 교육이 ‘특효약’…억압된 감정 풀도록 도와

일본에서 돌아온 뒤 그는 대체의학으로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동안 ‘외도’가 불가피했습니다. 비리재단이 쫓겨난 뒤 조선대 총장이 된 이돈명 변호사의 제안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세상을 고치는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교 때 월남파병반대운동으로 구속됐고, 대학 때는 한일회담반대 시위로 제적됐습니다. 의대생이 된 뒤에도 민청학련 참여, 교련 반대시위 조직 등 늘 민주화 운동의 전선에 서있었습니다. 그러던 그였기에 ‘사회를 치료하자’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다시 환자를 돌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년이 훨씬 지난 뒤였습니다. 조선대가 정상화된 뒤 그는 외진 곳이라 의사들이 가기를 꺼리는 조선대 부속 광양병원 근무를 자청해 대체의학으로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환자의 마음 상태가 질병 치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그를 찾아온 환자 가운데 마음에 담아둔 여러 가지 억압된 감정을 없앤 뒤 병이 쉽게 나은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관련 분야를 연구하고 명상 프로그램도 배워 ‘신념요법’, 빛명상, ‘화해와 감사의 산책’ 등을 환자 치료에 적용했습니다.

그는 1년 전 다른 의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대체의학을 연구하고 환자 치료에 적용하고자 하나통합의원을 열었습니다. 처음 “보완대체의학 동아리 모임 장소”정도로 생각했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들이 늘면서 바빠졌습니다. 그럼에도 병원 운영은 여유롭지가 않습니다. 그의 의술은 주로 상담과 교육이어서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전 원장은 병원 운영에 대해서는 “하늘에 다 맡기고 산다”고 했습니다.

“부족한 사람인데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 걱정입니다.” 환자 앞에서 늘 겸손하고 “환자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그를 믿고 전국 각지에서 많은 환자들이 오늘도 그를 찾고 있습니다. (062)225-9626.

광주/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Posted by 일호 김태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