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플렉스

소선재에서 2010. 8. 16. 14:02

노무현이 대통령때 , 기자들이 별별 트집을 다 잡았다. 그 중에 하나가 컴플렉스였다.
'너 말 막하던데, 상놈출신이라 그런거지?'
'너 고졸이라 대졸자들한테 컴플렉스있지?'
'너 막말하는거 그거 컴플렉스때문에 그런거지?'

기자놈들이 대통령하고 인터뷰를 하는데, 컴플렉스가 있냐고 하니, 설명해주기 좋아하는 노무현은, 
'저 컴플렉스 없어요. 제가 대통령까지 되었는데 무슨 컴플렉스가 있겠습니까?'

이러는 것도 한 두번이지, 기자들이란 기자는 죄다 와서는 컴플렉스있냐고 컴플렉스아니냐고 하는데, 이 정도면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돌아버리기 십상이다.

멀쩡한 사람 미치게 하는 건 사실 간단하다.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한테 한 마디씩.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너 오늘 좀 이상해 보인다'

그 사람 미치는 건 시간문제다.

강준만이 '김대중죽이기'라는 책이 뜨고 나서, '서울대의 나라'인가 하는 책을 냈는데, 이 책은 재미를 못 봤다.

강준만은 서울대 출신이 아니다. 서울대를 없애야한다는 주장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현실은 서울대를 나온 사람만이 그 말을 해야한다.

내가 50억을 벌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류대나온 학벌이야 바꿀 수 없는 것이니, 50억 벌고 나서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한다.

'제발 돈벌려고 아둥바둥 살지 마세요'

컴플렉스 들먹이는 사람들, 사실 컴플렉스는 지들한테 있는 거다. 알량한 자존심 상처받기 싫은 그 컴플렉스.




50억을 벌려면 최소한 몇 년(혹은 몇 십년, 혹은 성취를 못하고 삶이 끝날지도)이 걸릴텐데, 사람들에게 한 마디 충고를 하기 위해서 그 기간을 쓰겠다니....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요?
10.08.11. 22:40

제 생각에 이 세상에서 저를 잘 아는 사람은 두명입니다.
한명은 한국에 계신 분인데, 제가 스승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중은 아니고요, 지난번에 한국에 갔을때 두번을 뵈었지요.
또 한명은 제 아내입니다.
제 아내는 제가 오십억벌어야 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은 사람입니다. 제 아내는 제가 50억을 벌려고 하는 이유를 잘 압니다.
제가 50억벌면 재단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돈벌려에 아둥바둥 살지 말아라'는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를 잘아는 제 아내는 제가 50억 벌거라는 생각을 안 합니다.
전에 어떤 사람이 제 얘기를 듣더니 제 아내를 존경스럽게 보더군요. 어찌 이런 남자랑 사는지 말이죠. ㅋㅋㅋ
10.08.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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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제도로서의 종교를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도킨스와 마찬가지이지요. 맑스나 마오가 종교의 독성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불교도 제도의 폐해로 따지자면 기독교못지 않지요. 혹자는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남을 처들어간 적이 없다고 하는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본질은 다를바 없습니다. 호국불교, 이 얼마나 웃긴 개념인가요? 부디스트로서 박노자는 이에 대해 명쾌하게 논파했습니다.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역사를 보면, 불교쪽에서는 최근에서야 나왔습니다. 목사님의 말씀대로 임진왜란에서 일본은 배에다가 '나무묘법연화경'이라는 깃발을 달고 처들어왔습니다.

어떤 종교가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유아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젝의 불교에 대한 언급은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지젝의 다음과 같은 말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군요.

" 문제는 무념무상이라는 불교의 내적 평화의 원리에 있다. ‘분별적 사고를 중지하고 무의 상태로 돌입하는 것’이 윤리적 판단 자체를 거부하게 만든다는 것이 지젝의 지적이다. 그런 무차별의 종교에서는 진정한 혁명도 사랑도 불가능하다고 지젝은 판단한다. "

 지젝은 '윤리'를 존재가 아닌 '당위'의 차원에서 보고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스스로를 구속하고 종국에는 남도 속박하게 마련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달라이 라마에 대한 비판도 많고 비난도 있지만, 저는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하는 그의 말이 스스로를 속이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행한채로 행복하다'라는 말을 지젝에게 들려주면 무슨 개소리냐고 하겠지요. 붓다의 제자가 된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점점 불교와 멀어지고 있습니다. 확실히 '거리'는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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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에 종교에 대한 얘기중에 STERN님께서 해독의 ''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마오도 언급하셨는데요. 말씀을 보니 여러가지가 생각이 납니다.

저는 마오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서경석목사인가 초창기에 경실련활동했다가 지금은 자기마음대로 사시는 같은데, 분이 젊었을때 마오이스트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지금도 네팔같은 나라는 마오이스트들과 내전중인 같고요.

제가 마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컴플렉스'. 제게는 절대로 없는 그런 능력. 사람을 휘어잡고 추종자들을 부리고 천자가 되어 대륙을 지배하고 더군다나 수많은 여자들까지 첩으로 재미보는 그런 능력말입니다. 말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컴플렉스라고 하니 사실은 저도 그런 욕망이 있나 봅니다.

하여튼, 달라이 라마 자서전에 보면 20 시절 달라이 라마가 마오를 만난 얘기가 나옵니다. 베이징에 체류할때 달라이 라마는 공산주의에 대해서 상당히 호감을 느낍니다. 공산주의 사상의 많은 부분들이 불교의 사상과 매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마오의 카리스마, 사람을 다루는 능력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마오의 '불교에 대한 평가-인민의 독이라는' 대해 크게 실망하고 분노합니다.

정치지향을 체크해보는 싸이트에서 설문결과를 보면, 유명인사들의 정치성향이 4분면의 그래프에 나타납니다. 달라이 라마는 자유주의와 전체주의가 위치한 엑스축의 아래쪽(자유주의), 좌파와 우파의 와이축에서는 왼편에 위치합니다. 비록 마오에게는 실망하고 분노했지만, 어쨌거나 젊은 시절의 이런 경험이 지금 달라이 라마의 정치성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짐작을 봅니다.

시드니에서 만난 사람중에 제가 보고 배우는 점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저보다 아래입니다. 제가 한번은 얘기하기를,

'인민해방군이 티벳의 라싸로 처들어갈때, 진짜로 티벳의 억압받는 인민들을 해방시켜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신정일치의 사회에서 귀족계급인 불교승려들에게 착취당하는 인민들을 억압과 착취에서 구해준다고 말이다'

'아마, 모택동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공감이 가더군요.

말이 나온 김에 달라이 라마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자서전은 달라이 라마가 직접 같습니다. 구술을 받아 작가가 같지는 않았습니다. 서문에 보면 (티벳어가 아닌) 영어로 썼다고 합니다. (당연히)번역서를 봤습니다.

인상적인 얘기가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어렸을때 포탈라궁에서 생활하던 얘기입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중의 한명은 자기에게 밥을 주던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설명을 덧붙이기를 ' 이유는 없는데 아마도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과 같은 관계여서 기억에 남는 같다' 했습니다.

역시 주는 사람이 성속을 떠나 장땡입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애완견을 예뻐한다고 해도 개의 입장에서 주인님은 밥주는 사람이지요. 한국의 가정에서는 사람은 대개 가정주부고요.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것도 아빠품보다 포근한 것도 있겠지만 무래도 먹을 주는 사람인 것도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50억을 벌면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면서 말을 겁니다.

' 벌려고 아둥바둥 살지 마세요'

50억을 벌면 재단을 만들고, 밥주는 사업을 해야겠습니다. 언제나 밥과 반찬이 있는 식당. 하루 24시간 년중무휴로 문을 열어놓고 먹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와서 밥먹고 가는 식당말입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은 양식에 서명을 해야합니다.

' 벌려고 아둥바둥 살지 않겠습니다'

몇년 몇월 며칠 아무개 누구 서명 찌지직.

사업이 되어서 추종자가 몇명 생기면 종교도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교시는 '밥내천'으로 하고요. 언제나 밥과 국이 강처럼 흐르는 말입니다. 그러면 종교도 장사, 웁쓰~ 장사가 아니고 교세가 확장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종교의 창시자로서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된다면, 후세의 누군가는 이렇게 기록하겠지요.

"밥내천교의 창시자 일호는 이민생활에서 하도 배가 고파서 밥주는 곳이면 어디나 쫓아다녔다. 그가 밥내천교를 창시한 배경에는다른 사람 세배는 먹어야 배가 차는 그의 위대한 밥통과 호주에서제대로 먹고 지낸 처절한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밥내천교의 두번째 교시인 '일체의 도시락에 반대한다' 그의 호주생활이 원인이 것이다. "

쓰고 보니 전혀 역사에 남고 싶지가 않군요. 어쨌거나 이번주 토요일에 먹을 떡국 미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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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재에서 2010. 8. 16. 13:44

왠만하면 다른 사람 얘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오쇼 라즈니쉬가 기독교와 불교에 대해 한 얘기가 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대조적인 모습은 김용옥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고,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습니다. 오쇼의 말을 기억나는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이해의 서라는 책에 있는 얘기입니다.

 기독교는 가난한 이들에게 시혜를 배품으로서 사람들에게 채무의식을 심어준다. 그것이 기독교가 교세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반면에 불교는 위로부터 들어간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불교를 찾는 것이다.
예수와 달리 석가모니는 왕자 출신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던 사람이었다. 더이상 그 무엇도 그에게 만족을 주지못할때 그는 출가를 했다.

 뭐, 대충 이런 얘기입니다. 제 기억에 의존해서 많이 부족하군요. 원문의 훌륭한 문장과 뜻을 제가 많이 흠을 낸것 같기도 합니다. 궁금하신 분이 계시면 제가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보수적인 기독교-완제품 구원을 바겐세일하는 - 를 없애긴 어렵다고 봅니다. 없어진다면 좋겠지만요. 그럴수도 없지만 만약 보수적인 기독교를 없앤다면 사람들은 분명 그와 유사한 다른 종교를 또 만들어낼 것 입니다. 문제는 보수적인 기독교가 아니라 그에 놀아나는 사람들이지요.

그럼, 또 '계몽'이라는 문제가 나오는데, 전 계몽은 불가능하다고 보는데요. 달라이 라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Don't be a messenger, Be a message'

아무리 메세지를 전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설득도 안 되고 계몽도 안 됩니다. 계몽을 할 수 하는 유일한 길은 자기가 메세지가 되는 것 밖에는 없는데, 자기가 메세지가 되버리면 그때는 더 이상 계몽할 이유가 없어지는게 아닐까 그렇게 짐작하고 있습니다. 계몽할 이유가 없어지는 건 계몽할 대상이 없어지기때문이지요. 자기가 메세지가 되버리면요. '같이 떨어'버리는데 누가 누구를 계몽하고 자시고 할게 없지요.

메세지 얘기를 하니 노무현 얘기가 생각이 납니다. 저는 노무현대통령이 퇴임하고 난 후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발가락양말이나 구멍가게에서 담배피는 사진이나 사람들하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에 환호를 보냈는데요.

저는, 아니 원래 그런 양반이었는데 사람들이 왜들 이러지 했었습니다.

제 짐작에, 사람들은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있을때 그가 했던 말은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설사 들었다하더라도 그건 대통령의 말이었기때문에 전혀 와닿치 않았고요. 그런데, 퇴임하고 나서 그 분을 보니 '아, 이 양반이 우리들하고 같은 사람이구나'하는 걸 느꼈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은 의도했던 바가 아니었겠지만, messenger에서  message가 되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요. 또 한편 생각하면, 노무현은 메신저가 되는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비로소 메신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삶은 참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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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민신문을 보는데, 어느 교민분의 칼럼이 있더군요.

어제 염화미소님이 하셨던 말씀, '음악'과 '소리'가, 제가 답글로 달았던 '공명'과 '초끈이론'이라는 말도 그 칼럼안에 있었습니다. 지난 5년넘게 초끈이론에 대해 듣지도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제 이런 얘기를 하고 오늘은 또 신문에서 이런 얘기를 보게 되네요.

소재야 굉장히 비슷했지만 내용은 아주 달랐습니다. 초끈이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더니 끝에는 기독교의 세계관을 피력하시더군요.

저는 어떤 세계관을 가질지 어떤 종교를 가질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라고 봅니다. 저는 그것이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이런 과정 역시도 프로그래밍이라고 봅니다만, 하여튼 다른 누구가 강제하거나 뭐라 하거나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오늘 그 초끈이론을 언급한 신앙고백에 대해서 무슨 반대가 있을 수 없지요. 하지만, 유감스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저는 과학의 발견 내지는 업적을 가지고 자기 종교를 정당화하는 것을 보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 양형진교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가끔 메이져신문에 기명칼럼을 냅니다. 불자로서 화엄경에 묘사된 세계가 지금 현대물리학이 보는 우주와 얼마나 흡사한지 말입니다.

 오늘 본 칼럼은 마지막에 갑자기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나가서 뜬금없다 싶었지만, 설사 말이 되는 논리적인 글이었다 할지라도 공감이 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왜 불교나 기독교나 그렇게 과학의 성과를 가져다가 인용해야하는 것일까요? 답은 자명합니다. 자기 종교가 맞다는 것을, 자기 종교가 옳다는 것을, 자기종교가 합리적이라는 것을, 자기 종교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의 이면에는 지금 이 시대가 과학이 그 어떤 종교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의 제일 막강한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종교가 힘이 셌던 옛날에는 과학을 억눌렀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게 아닐 것입니다.

 왜 그렇게 힘센 누군가를 빌어와야 하는 겁니까? 그냥 자기 존재 그대로 존재증명을 하면 안 되는 겁니까? 도대체 이런 폭력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짜증이 나다못해 우울해집니다. 꼭 힘센 누군가에 알랑방구를 끼고 살랑거리면서 자기들이 더 힘세다고 자랑하는 것 같아 유치하게만 느껴집니다.

과학이 인류의 어리석음을 타파한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이 구원이 될 수 없음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고, 더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한 곳일수록 불교는 더욱 더 인기를 끌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워낙 무지몽매함에 치우쳐왔으니 더 많은 과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치우친 것의 좌표만 달라졌다 뿐이지 본질은 똑같을 뿐입니다.

과학역시도 앞으로 몇백년 후에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겠지만 하여튼 제가 죽을때까지는 이런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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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관한 몇가지 이야기

 

1.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때 시각장애인이 같은 학년에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이 제일 싫다고 하더군요. 빗소리에 다른 소리들을 들을 수가 없다면서요. 전 빗소리를 좋아하는데 비가 오면 가끔 그 말이 생각납니다.

 

2.
텔레비젼뉴스나 드라마를 볼때, 두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소리만 듣고 화면은 보지 않는 경우.
둘째는, 화면만 보고 소리를 듣지 않는 경우.
소리만 듣는 경우는 80%넘게 이해를 할 수 있지만, 화면만 보는 경우는 무슨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귀를 잃을래? 눈을 잃을래? 저라면 둘 다 안 잃을래하겠습니다만.

 


3.
인간의 가청주파수는 다들 아시다시피 이십헤르쯔에서 이만헤르쯔입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백헤르쯔아래로 내려가면 듣기가 어렵습니다. 귀가 밝은 사람은 부웅하는 좀 기분나쁜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만팔천헤르쯔 올라가도 역시 마찬가지고요. 사람의 기준에서야 초음파이지 박쥐에게는 초음파가 아니라 그냥 소리입니다.

 

4.
소리는 전달하는 매개체가 없으면 전파가 안 됩니다. 진공상태에서는 소리가 전달이 안 됩니다. 소리 즉, 음파는 파동현상입니다. 떨리는 것이죠.

 

5.
그런데, 사실은 물질자체가 떨리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에서 원자는 중성자 양성자 전자 어쩌고 저쩌고 합니다. 원자의 핵과 핵을 둘러싸고 있는 전자의 거리를 축구장에 비교하면서 원자라는 것이 사실은 거의 빈공간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요.
그럼 이 중성자 양성자는 또 뭘로 이루어져있나 하는게 또 과학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 생각엔 참 쓸데없다 싶은데, 어쨌거나 쿼크나 초끈이론같은 걸로 설명하는 이론이 있나 봅니다.
문외한인 제가 대충 이해하기로는 물질의 근원입자를 특히나 초끈이론은 '떨리는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6.
이런 과학의 설명을 갖다가 '색즉시공'이나 (원자는 비어있는 공간이다), '율려'의 (물질은 떨리는 것이다) 정합성에 대한 증거로 갖다 쓰는데, 그거야 뭐 갖다 쓰는 사람 마음이고요.


7.
하여튼 '소리'를 사랑하는 저로서는 이 세상은 '떨림'이다라는 설명이 맘에 듭니다. 떨림은 필연적으로 '공명'이라는 현상을 수반하는데, 이 공명이야말로 이 세상의 본질이랄까요? 사실 세상의 본질이라는 말 자체가 우스운 말이지만, 하여튼 '같이 떠는 것'에 이 세상의 구원이 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같이 떠는 것'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지요.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는 것, 무당이 접신할때 부르르 떠는 것, 저는 이것들도 '사랑'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이 개명천지에 아직도 그런 미신을 믿는 것이냐?'고 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비가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장님의 말과는 달리, 이런 말은 제게 아무런 울림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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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총회갔다온후 밤을 꼬박 새워서 2800자 에세이를 마쳤습니다. 이로써 실질적인 방학에 돌입했습니다. 졸업할때까지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클리닉에 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시험과 숙제의 압박이 없는 홀가분한 마음은 실로 하늘을 나는 것 같습니다.

 방학을 하고보니 무엇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기중에는 내내 머리 한 구석에 박혀있는 숙제, 시험때문에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해도 전적으로 놀아주지 못하고, 또 집안일이며 밥 해먹는 거하며 이런 저런 일들 모두 항상 뒷전이었습니다.

 오늘은 인간답게 사는 첫 날.

제가 한 일은 집안 청소. 장도 보고, 둘째 아이 응가한 것도 씻겨줬습니다. 책꽂이와 책상정리도 마쳤습니다. 깨끗해진 책상을 보니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밥도 인간답게 먹으려고 사시미용 연어를 사서 초밥을 만들어 봤습니다. 주먹밥크기로 초밥을 만들어서 그 위에 와사비와 쌔먼 조각을 올려놓았더니, 맛이 완전 맹탕입니다. 대식가는 미식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인간답게 먹었다는 것에 만족해야했습니다.

 밥먹고 나서는 인간답게 살려고 제가 저한테 침을 놓았습니다. 마우스클릭질 때문에 오른팔이 아팠는데, 학기중이라 방치해놓았던 참입니다. 침을 놓고서 맘편히 월드컵 경기를 보고 있자니, 이게 바로 인간답게 사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오늘부터 인간답게 살아야겠다'고 떠들었더니, 큰 아이가 한다는 말이, '아빠가 인간을 사러 간다'고 합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더라? 아~ 노래가사였습니다. 앞의 가사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고, 중간부터 기억납니다.

 ~~~~   인간답게 살고 싶다.  아아~ 민주노조 우리의 희망'

 이 노래가 아닐까..........인간답게 사는 첫날 생각난 노래였습니다.

 
2010.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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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답은 완전 소용이 없는데요.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인데요, 그래도 욕먹을 각오하고 말씀드리자면요.

진보신당분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진보신당분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두려움에서 벗어난 명석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세상을 살아갑니다.

 명석한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그런 두려움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속에 있는 사람들은 명석한 사람들이 자기들을 바보라고 한다고 듣습니다. 아무리 멍청이라고 할지라도 자기를 멍청이라고 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속에 있는 사람들은 명석한 사람들을 싸움닭으로밖에는 보지 않습니다.

명석한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지만, 두려워하는 사람중 그 누구도 자기들을 가르쳐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가르쳐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를 가르치려 하는 사람들, 맞고 틀리고를 떠나 재수없는 인간들입니다.

 명석한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이런 가시밭길을 걸어간다. 왜 그들은 우리를 외면하는 것일까? 이걸 알기 위해서는 진보신당분들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자신들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지 내지는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쥐박이같은 인간들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려들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멍청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게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절대로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계몽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속 그렇게 두렵게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이것이 야비한 인간들이 하는 요리법입니다. 이것이 한나라당이 절대과반수이상의 국회의석수를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진보신당이 3%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진보신당분들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이상,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두려움과 명석함은 '돈 후앙의 가르침' 중 '앎의 사람의 되는 과정의 4가지 적 중 첫번째 두번째 단계이자 적입니다)

 
봄산
말하자면, 오만한 사람들이고 자기에 대한 성찰이 없는 거군요. 사람이 모두 생각이 다른 법인데, 자신들의 신념만 고집하며 그 길로만 가자 하더군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배려를 모르고 연대를 거부하는 것이 과연 진보의 길일까요? 이 분들의 문제점은 한 길만 고집함으로써 스스로 자유로움을 잃은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구속되고 자유롭지 못한데, 그리고 그 자유롭지 않음이 보이는 데, 누가 그 길을 같이 가고 싶어 할까요? 자신과 다르면 틀렸다 말하고 다른 이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을 뿐더러 그 자체를 못 견뎌하는 게 현재의 집권세력과 닮은 점인 것 같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명석함은 결국 세상과 사람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못하게 만드는, 그들 자신을 옭아매는 덫인 셈입니다. '헛똑똑이'가 되어버린거지요. 음..여기까지 댓글 달다가 해답을 찾았어요. 결국 관건은 그 경직성에 있는 거군요. 그들이 멍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조차도 다양성이 이 세상을 유지하고 번성하게 하는 것이고, 자유로움이 좋은 것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압니다. 사람들은 그 자유롭지 못하게 될 구속을 본능적으로 내다보고 거부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유로움이 없으면 두려움 또한 그대로 남게 되겠지요. 자신들에게 이로운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사실상 '두려움없는 명석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두려워하고 있는 멍청이들'은 멍청한게 아닌 겁니다. 그래서 노무현이 얘기했듯 개체로서의 인간은 변하지 않지만, 그 개체가 모인 집단으로서의 인류는 늘 진보해 왔던 겁니다.
유레카! 동기부여를 해 주신 덕분에 좋은 공부했습니다. thank you!^^
10.06.1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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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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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 읽지 못한 소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곳간에 양식은 충분하고, 지붕도 다 고쳐두었습니다. 장작도 다 마련되어 있고, 가축들도 우리에 잘 가둬놓았습니다. 그러니, 신이시여, 비를 내리려면 내리소서'

 길거리의 수행자의 버전은 이와 다릅니다.

 '잃어버릴 가축도 없고, 고쳐야 할 집도 없고, 보관해야할 양식도 하나 없습니다. 가진게 없으니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이시여 비를 내리려면 내리소서'

 하도 오래전에 본 것이라, 그리고 끝까지 읽지도 않은 책이라서,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법구경을 보다가 '길거리 수행자의 버전'이 법구경에서 온 것을 알고 저으기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2.

한국의 60년대, 70년대 이야기입니다. 대다수 집에서 한겨울에 따뜻한 물을 쓰기위해서는 일일이 물을 데워야했습니다. 세숫대야나 들통에 물을 데웠습니다. 바가지로 퍼서 썼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바로 온수가 나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시절 누군가는 집안에서 따뜻한 물로 씻으면 정말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나이가 들고, 일년내내 집안 화장실에서는 온수가 나오고, 이제 자동차도 굴리고 사는데도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인터넷 어디에선가 봤습니다. 그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3.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적게 가진 것을 걱정하기보다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

논어에 나오는 말입니다. 문제는 가진게 적어서가 아닙니다. 온수가 나오는 수도꼭지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젠 어느 누구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골프를 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아니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못하는 골프를 나는 하기때문입니다.
논어의 구절을 보면서 2500년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별로 변한게 없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4.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미래에 희망을 품고 살아가라는 말을 볼때마다, 이런 개소리가 어디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최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샘터지나 좋은 생각같은 곳에서 이런 얘기들을 볼 때마다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짓 주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보다는 아예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이 자유를 향한 길이라고, 그리고 모든 걸 버릴때만이 모든것에 대한 완전한 소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옛날 얘기입니다. ㅋㅋㅋ

 5.

지금의 저는, 현재가 미래에 저당잡히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이것이 제가 머리속으로 아는 것입니다. 잘 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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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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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아는 분이 결혼에 대한 얘기를 메일로 해오셔서 거기에 대한 답을 메일로 보냈습니다. 제가 쓴 부분만 여기에 옮겨봅니다.

 ////////////////////////////////////////////////////////////////////////////////////////////////

 결혼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관찰을 하고 학위도 받고 그러겠지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갖는 보수성은 충분히 인지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결혼을 기반으로한 가정이 필수적인 만큼, 결혼이라는 제도의 유지를 위해서,아니면 최소한  결혼이라는 제도의 붕괴를 막기위해서 보수주의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지요. 동성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그 한 예입니다.

 호주는 잘 모르겠고요, 한국을 보면, 우습게도 이런 보수주의자들의 결혼생활은 많은 경우, 일부일처제에 충실한 결혼생활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자들, 씨를 뿌리는 본능이라는 핑계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여자에게는 가혹한 기준을 들이댑니다. 

 현재의 결혼이라는 제도도 역시 제도인만큼 생주이멸의 과정에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죽기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제도로서의 결혼은 계속 유지되겠지요. 하지만, 몇백년이 지나면 결혼이라는 제도도 역시 다른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쯤이면 지금 현재의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도 바뀌거나 아마 사라질 것이고요.

 그렇긴해도,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라는 것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남자만큼 여자의 관심을 끄는 존재를 보지 못하였다. 나는 여자만큼 남자의 관심을 끄는 존재를 보지 못하였다' 붓다의 말씀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결혼이라는 제도가, 부처님의 뜻에 반하는 제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대로 읽지는 못했지만,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은 일부일처제로 묶이는 결혼이 사유재산, 그러니까 소유라는 것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것과 내것의 구별이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집단혼이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결혼제도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의 시작도 집단혼이었고 마지막도 집단혼이라면 순환의 고리에 걸맞는 완벽한 수미쌍관이 되겠군요.

 그렇다고 제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속박의 의미가 강하긴 하지만, 이런 속박이야말로 자유를 향한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유는 무엇을 벗어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아직까지 몸으로는 알지 못해도, 머리속으로는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결혼을 안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무지몽매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결혼하고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요.결혼생활이야말로 선방에서 가부좌틀고 앉아있는것보다 훨씬 더 큰 공부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착하고 지혜로운 아내에게 많이 배운 것도 있지만, 설사 악처라 하더라도, 그 배움이 더 크면 컸지 적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악처하고 살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훌륭한 아내를 만났는데도 이렇게 때로는 삐걱거리니 말이지요. ^^

 ///////////////////////////////////////////////////////////////////////////////////////////////////

 결론에 가서는 아내자랑이 되어버렸네요. 아내자랑은 팔불출인데, ㅋㅋㅋ 하지만, 자세히 보면 훌륭한 아내를 만났는데도 이렇다면 역시 나는 못난 놈이다라는 자기고백도 됩니다. 아내자랑을 한게 아니라 제가 못났다는 소리를 해 놓은 것이니 너무 욕하지는 말아 주세요. ^^

 2010.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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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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